[사설] 국가 혁신하려면 청와대부터 바꿔야

입력 2014-12-05 02:50
대통령이 집무하고 거주하는 청와대는 최고의 보안을 요하는 국가 중요 시설이다. 직원 채용 시 사돈의 팔촌까지 파악할 정도로 신원조회가 엄격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이유는 국가 안위와 직결된 가장 높은 수준의 기밀문서, 정보들이 모이고 소비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문건이 뭉텅이로 유출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고 진노할 만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윤회씨 관련 문건 진위 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청와대에 파견된 경찰 고위 간부가 작성한 문건의 유출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청와대의 공직기강이 무너졌고 보안 시스템에 중대한 허점이 드러났음을 의미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최초 언론보도 이후 우왕좌왕, 말 바꾸기 대처방식으로 미루어봤을 때 과연 청와대가 외부로 유출된 문건의 규모와 내용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청와대의 해명과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와대는 처음 이 문건을 ‘시중에 떠도는 찌라시를 짜깁기한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건 최초 보도 신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8명의 법률대리인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기록물로 정의했다. 한순간에 ‘찌라시’가 비밀을 요하는 대통령기록물로 바뀌어버렸다. 논리의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것이 청와대의 현주소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아마추어 청와대’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레임덕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태가 심각한 국면으로 흐르는데 청와대에서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는 사람 하나 없다. 비서실 총책임자는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김 실장이 문건 내용을 구두로 보고받았을 때 사안의 중요성과 파급효과를 예측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기민하게 대응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다. 김 실장은 소임 소홀에 대한 응분의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책임정치에도 부합한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기도 전에 레임덕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대통령 개인의 비극일 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온갖 적폐를 해소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문고리 권력’ 논란에 발목이 잡힌다면 대한민국은 또 한번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답은 자명하다. 국가 혁신은 청와대 혁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건 논란을 통해 지금까지 드러난 청와대 적폐들만 해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는 적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지금의 인적 구조와 시스템으로는 청와대가 혁신의 컨트롤타워가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청와대 혁신이 선행되지 않은 국가 혁신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측근 관리에 실패한 대통령의 책임 또한 작지 않다. 이번 사태의 최종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 사태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매듭지을 수 있는 사람 역시 대통령이다. 온정주의에서 벗어나야 숲이 보인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느냐’, ‘레임덕으로 가느냐’는 대통령 결단에 달렸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