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김도일] 공부 못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입력 2014-12-05 02:05

한국과 지구촌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예수를 믿으면 만사가 잘 풀려서 공부를 안 해도 되고, 별반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적이 있나. ‘어차피 영생의 약속을 받은 몸인데 뭐 그리 발버둥치며 아침부터 학교에 가서 시달리고 오후엔 학원까지 다니며 피곤하게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불평은 해보지 않았는지. 아니 ‘예수 믿으면 병에도 걸리지 않고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이 쑥쑥 오르며 쉽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혼자서 소리 질러 본 적이 있는지. 괜찮다. 그런 불평 한마디 안하고 성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재능’, 즉 달란트를 주셨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를 탤런트라고 부르지만 이 말은 재능 또는 소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각기 다른 재능을 주셨다. 어떤 이는 수학을 잘하게 하시고, 어떤 이는 글을 잘 이해하게 하시고, 어떤 이는 기계를 잘 다루게 하셨다. 직업종류사전을 보면 이 세상에 있는 직업의 종류는 1172개도 넘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직업은 대개 100종 미만이다. 교육 심리학자 길퍼드의 지적 모형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120가지의 다양한 능력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런 능력이 인간 상호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계발해야 할 잠재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남의 흉내만 내다가 고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각자에게 맡겨진 재능이 다른 데 자기 것보다 남의 것이 크고 멋있어 보인다고 해서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다. 유명인들이 지닌 재능을 부러워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그들이 가진 재능이 없는데도 그들의 재능을 흉내 내는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를 부지런히 생각하며 노력해야 한다. 재능은 화단의 꽃씨와 같아서 부지런히 물을 주고 비료를 주어야 비로소 싹이 난다.

학습장애를 갖고 태어났던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도 학교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던 학생들이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학교를 몇 년 다니지 않았지만 이중섭 함석헌 주기철 한경직 같은 걸출한 제자를 키워냈다. 그들은 굴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전화를 발명한 그레이엄을 아는가. 그의 아버지는 말을 못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청각장애인학교 교사였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에서 음악과 언어를 전공한 후, 청각장애인들의 학습을 돕기 위해 노력한 결과 29세에 전화를 발명했다. 후일 그는 보스턴대학에서 교수를 하면서도 청각장애인학교를 열었다. 나중에 전화발명특허를 내서 많은 돈을 모으게 되었는데, 그 돈으로 미국 청각장애인협회를 창설해 수많은 청각장애인들을 도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보다는 청각장애인들의 선생으로 기억되고 싶다.”

새것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귀찮은 일이기는 하나, 그건 나만의 ‘재능’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박태환 선수가 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해보기 전에 어찌 자신이 수영에 소질이 있는지를 알겠는가. 이휘소 박사가 방정식을 푸느라 잠을 설치지 않았다면 어찌 자신이 과학자가 될 소질이 있는지를 알았겠는가. 박완서씨가 고전을 읽고서 감상문을 써보지 않았다면 어찌 자신이 소설가가 될 소질을 알았겠는가. 전제덕씨가 하모니카를 불어보지 않았다면 어찌 불후의 하모니카연주가가 되었겠는가.

성적은 잘 안 나와도 누구나 한두 가지는 좋아한다. 입맛에 당기는 것이라도 죽도록 해보라. 수능 점수가 낮아도,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잘살 수 있다.

김도일 교수(장신대 기독교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