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20년 정도를 미루고 미룬 모임 하나가 만남을 가졌다. 첫 제자들이다. 1992년 나는 10년 강사를 작별하고 드디어 평택대학 조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거기서 국문과를 새로 만들었다. 야간이었다. 첫 강의는 분홍 노을이 하늘을 덮던 저녁 6시 지하 101호 강의실이었다. 나도 학생들도 긴장하고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국문과 제1회 졸업생들을 이번에 졸업 후 처음 만난 것이다.
나는 가슴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연주 용근 범근 성규 장근 명현 여섯 명을 만났다. 이렇게 만나는데 20년이 더 걸렸다. 그동안 살아 내느라 얼마나 바빴겠는가. 졸업식 날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지방대학에, 야간에 너희들 졸업 후 취직이 어려울 수 있다.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그래서 가령 구두를 닦는다 치자. 그래도 내가 대학졸업잔데 거들먹거리며 침을 퉤퉤 뱉으며 얼렁뚱땅 닦는다고 하면 너희들은 구두 하나도 못 닦는 사람이 될 것이지만 대학졸업자로서 구두만큼은 누구보다 잘 닦는다고 말하면서 최선을 다해 성실히 닦으면 구두 주인이 말할 것이다. 수십 년 구두를 닦아도 이렇게 성실히 닦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한다면 너희들은 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졸업식날의 추억과 지난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나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훈훈하고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었다. 연주는 교수가 되고, 범근이는 사장이 되고, 명현이는 학교에 남고, 용근이와 성규는 당당한 회사원이며, 장근이는 데모에 앞장서는 말썽꾸러기였는데 쟤가 뭐가 될까 했는데 성실한 자기 위치를 구축한 멋진 청춘중년 남자가 되어 있었다. 모두 엄마 아빠였다. 모두 남편 아내였다. 이런 감동은 또 없었다. 고맙다, 고마워.
나는 제1회 제자의 주례도 섰다. 그들 부부는 그날 나오지 못했지만 알토란처럼 살고 있다 하니 나는 가슴이 벅차고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한잔씩 돌리는 막걸리에 나는 행복했다. 기분 좋게 계산을 했다. 자기들이 내겠다고 아우성이었지만 그렇게 행복하게 이유 있게 내는 밥값도 없었으리. 그들이 준 향 좋고 아름다운 꽃다발은 아직도 내 거실을 가득 채우는 사랑으로 눈부시기만 하다.
신달자(시인)
[살며 사랑하며-신달자] 첫 제자들
입력 2014-12-05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