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에 이은 권력암투설이 계속 확산되면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책임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수면 위로 불거진 이른바 ‘비선 실세’와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측 인사들 간 갈등을 초기에 진화하지 못한 만큼 역할에 대한 의구심이 재차 거론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파문은 출범 3년차를 앞둔 박근혜정부의 국정 운영을 표류하게 만들 수 있는 휘발성이 큰 사안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김 실장의 거취가 중대 기로에 섰다는 시각이 많다.
여권에선 우선 김 실장의 초기 대응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김 실장은 지난 1월 초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문건을 토대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다. 김 실장은 당연히 사실관계 확인을 추가 지시했어야 했지만 별다른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김 실장이 문건에 거론됐던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3명에게 확인했으나 “사실이 아니다”는 답변만 받고 내부 조사를 종료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봄 청와대 내부 문건 유출 사실을 확인했으면서도 본격 감찰을 벌이지 않은 것은 중대한 실수였다는 지적이 많다. 김 실장은 당시 박 대통령에게 문건 유출건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경정 교체 이후인 지난 5월 청와대가 실제 유출자를 적발했다는 의혹도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았다. 김 실장이 초기부터 자신의 교체설 확인, 청와대 내부 갈등은 물론 업무 분장을 확실히 정리했으면 현재의 파문은 처음부터 막을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3일 “청와대 내부에선 조금 이상한 조짐만 보여도 감찰 등을 통해 확실히 정리하는 게 필요한데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 직후 김 실장이 파워게임이 본격화되던 초기 단계부터 아예 고립됐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 경찰관들이 대부분 한직으로 밀려난 것에 대해 “김 실장이 대통령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듣고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권력다툼에서 배제됐거나 이를 정리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 실장 역시 최근 친박계 의원과의 통화에서 당혹스러움과 답답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김 실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만큼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입지를 더욱 단단히 굳힐 것이라는 상반된 견해도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일벌백계’를 주문하면서도 김 실장 등에 대해선 “헌신해 왔다. 신뢰하고 감사드린다”고 했다. 김 실장이 실제로 교체된다면 관련 문건이 ‘시중의 풍설(風說)’이 아닌 현실화되는 셈이라는 우려도 청와대 내부에서 나온다.
문건에 거론된 이 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관련 내용이 모두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행보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일각에선 이들 중 일부의 사퇴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여전히 건재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 관련기사 보기◀
[‘靑 정윤회 문건’ 파문] 김기춘 비서실장, 넘어지나… 살아남나
입력 2014-12-04 03:22 수정 2014-12-04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