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 관련 인물 가운데 단 한명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56·사진) EG 회장이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정씨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흙탕물 폭로전을 펼쳤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도 필요할 때마다 청와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묵묵부답’이다.
박 회장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친인척 비리 예방을 이유로 고강도 감찰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석에서 자신을 옥죄는 세력의 배후로 정씨와 3인방을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3일 “박 회장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발생하면 박 회장이 다치는 것은 물론 박근혜정부 자체가 엄청난 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면서 “그래서 청와대가 박 회장 주변에 대한 감찰을 강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사랑하는 동생에게 브로커들이 접근해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 박 대통령도 이 감찰을 용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대 정부 모두 친인척 비리로 몰락의 길을 걸었던 점도 배경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가족사의 불행을 겪은 박 대통령에게 감찰은 동생을 지키는 보호장치일 수 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자신에 대한 감찰이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섰다는 불만을 사석에서 여러 차례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찰’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견제’라는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박 회장과 정씨·3인방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은 여권에서 정설로 굳어져 있다. 하지만 ‘누가 먼저 상대방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느냐’는 질문에는 해석이 분분하다. 3인방이 자기들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박 회장을 코너로 몰아붙였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박 회장이 “3인방이 박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다”고 먼저 비판하다 반격을 당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박근혜정부 들어 권력암투설이 등장할 때마다 박 회장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지난 3월 시사저널이 보도한 ‘정씨의 박 회장 미행설’도 그랬고, 이번 파문도 마찬가지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박 회장이 정씨·3인방 세력과 대립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박 회장이 긴 침묵을 깰 가능성은 크지가 않다. 대통령 동생이라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국정이 대혼란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누나인 박 대통령까지 피해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박 회장이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권력암투설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박 회장은 ‘말을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누나는 동생을 위해 고강도 감찰을 펼쳤고 동생은 누나를 위해 침묵하는 상황이 길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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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2-04 03:17 수정 2014-12-04 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