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온 것을 알려주는 듯 12월 첫날부터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다. 이미 나무들과 개구리들은 동면에 들어갔다.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자연의 인내가 시작된 것이다. 인생도 추위와 싸우고 이겨내야 하는 인내가 필요한 시기가 온다.
세기를 초월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어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중에서)처럼 인내로 견뎌내야만 하는 ‘인생의 겨울’은 모두에게 있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불우한 삶을 살았던 그는 젊은 시절 고독한 유배생활을 통해 ‘인생의 겨울’을 성찰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인생의 겨울을 이겨내는 에너지를 ‘역경지수(AQ·adversity quotient)’라고 한다. 특별히 이스라엘 심리학자들은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와 함께 역경지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양한 연구실험을 종합해보면 인생의 자아실현은 지능지수의 영향이 20%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감성지수(40%)와 역경지수(40%)가 좌우한다고 한다.
역경지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잡초 정신’을 말한다. ‘뿌리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논밭의 작물들은 가뭄이 오면 쉬이 말라버리지만 잡초들은 가뭄이 와도 생생하다.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민들레 같은 작은 로제트 식물들은 땅 밑으로 무려 1m나 깊이 박혀 있으며, 마치 우엉처럼 두꺼운 뿌리를 펼치고 있다.
‘메귀리’라는 잡초는 수염같이 가늘고 긴 뿌리를 뻗는다. 한 포기의 수염뿌리를 모두 연결해보니 무려 500㎞가 넘었다. 이처럼 뿌리는 가물어 수분이 부족할 때에 물을 찾아서 깊고 길게 뻗어나가는 것이다. 인생의 뿌리도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역경을 만나게 되면 선명하게 보이게 된다.
인생의 뿌리를 깊게 내리도록 하는 교육을 ‘역경 교육’이라고 한다. 유대인은 역경 교육이 철저한 민족이다.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은 유대인의 3대 명절이다. 유대민족의 역경을 기억하는 날이다. 지금도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고난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역경을 극복한 조상들의 정신을 배우도록 한다. 유월절 일주일 동안 조상의 고난의 눈물을 상징하는 소금물, 고통스러운 노역을 상징하는 쓴 나물, 출애굽 때 먹었던 무교병을 만들어 먹는다. 조상들이 겪었던 고난에 동참하는 훌륭한 ‘역경 교육’이다.
지금부터 40년 전 유명한 소설 ‘25시’의 저자이며 정교회 사제였던 게오르규는 한국을 방문해 이렇게 말한바 있다
“나는 25시에서 직감적으로 ‘빛은 동방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 동방은 거대한 중국이 아닙니다. ‘작은 나라’ 한국이 분명합니다. 왜냐면 당신네들은 수없는 고난을 당해온 민족이며, 그 고통을 번번이 이겨낸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고난의 수렁 속에 강제로 처박힌 민족이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성서의 ‘욥’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의 예언대로 역경지수가 높았던 우리 민족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세계선교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의 잡초 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칭찬 교육’이 넘치고 있다. 자녀들이 칭찬과 격려 속에서 자라는 것이 매우 기쁜 일이다. 그러나 ‘과정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칭찬’을 하는 것은 역기능적이라는 연구 보고가 많다. 또한 과도한 칭찬은 자아도취를 야기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작은 시련조차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아이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칭찬만 받는 아이들은 과잉보호돼 온실 속의 화초처럼 뿌리가 약해 작은 역경에도 시들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자녀들에게 ‘역경 교육’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많은 분이 하고 있다.
필자가 아는 한 분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방학이 되면 온 가족이 하루 금식기도를 했다. 금식을 마치고 너무 배고픈 아이들은 간단한 음식을 놓고도 “하나님 아버지 먹을 음식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면서 펑펑 울었다. 최고의 ‘역경 교육’을 한 셈이다. 지금 이 아이들은 신앙 안에서 성장해 귀한 사역들을 하고 있다.
주님은 지금도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면서 연단한 자에게 의와 평화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히 12:6∼13).
김종환(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
[김종환 칼럼] 겨울이 오지 않으면 봄도 오지 않는다
입력 2014-12-06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