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소설가 김탁환·PD출신 이원태 영화화 겨냥한 글쓰기 새로운 도전

입력 2014-12-05 02:31
작가가 영화판을 흔드는 시대를 열겠다며 함께 회사를 차린 소설가 김탁환씨(왼쪽)와 PD출신 이원태씨. 고향 친구인 두 사람은 첫 작품인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에 대해 “한번 손에 쥐면 질주하듯 끝까지 읽게 되는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이동희 기자
‘열하광인’ ‘혜초’ 등의 히트작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 김탁환(46)씨는 소설을 맘껏 쓰고 싶다며, 그 좋은 카이스트 교수직을 2009년 걷어찼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다시 모험에 나섰다. 소설이 어쩌다 눈에 띄어 영화화되는 기존 문법을 깨고, 처음부터 영화제작을 겨냥한 소설, 이른바 ‘무블(영화를 뜻하는 movie와 소설을 뜻하는 novel의 합성어)을 쓰겠다는 것이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둘이다. PD 출신 동갑내기 고향 친구 이원태(46)씨가 함께했다. 그 역시 잘나가던 방송사를 2005년 집어치웠다. 10년 전부터 죽이 맞아 비슷한 작업을 해왔으나 2년 전 작심하고 기획사를 차렸다. 각자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원탁’. 원탁의 첫 성과물인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민음사)이 최근 출간됐다.

“미국에선 감독, 배우, 작가, 이 셋 중 하나가 영화를 만들지요. 한국엔 앞의 두 가지 길 뿐입니다. 그 세 번째 길을 우리가 만들 겁니다.”(김탁환)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둘은 ‘미저리’의 스티븐 킹, ‘주라기 공원’의 마이클 크라이튼처럼 영화판을 흔드는 작가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미 영화화 된 ‘노서아 가비’ ‘조선 마술사’ 등은 기획은 PD출신이, 글은 소설가가 쓰는 분업 방식이었다. ‘조선 누아르’는 기획과 소설 쓰기 모두 함께 했다.

“조선시대의 대부 같은 영화를 만들자. 폼 잡는 깡패 영화가 아니라 진짜 인간느와르를 보여주자.”

이런 목표를 앞에 두고 경상도 억양이 아직도 강한 두 남자는 의기투합했고 시대, 인물, 이야기 얼개 등을 구상했다. 쓰는 것도 어느 부분은 김씨가, 어느 부분은 이씨가 썼는데 서로 고쳐 쓰기도 해 어느 부분을 누가 썼다고 하기가 뭣하다고 둘은 입을 모았다.

‘조선 누아르’는 조선의 밤을 지배한 검계의 대부 나용주와 권력의 정점이 된 왕의 결탁을 다룬다. 나올법한 말 타는 장면이 없다. ‘신비한 TV서프라이즈’ 같은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했고 영화판에서도 일해 재정 문제에 감이 뛰어난 이씨의 조언 덕분 덕분이다.

“말이 얼마나 예민합니까.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험해서 감독도, 배우도, 스텝도 모두 꺼려요. 제가 말렸죠, ‘탁환아, 그건 안 된다’ 하고. 하하”(이원태)

소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가 시종 속도감 있는 문체로 진행된다. 하지만 선악이 선명해야 흥행에 성공한다는 공식을 깨고 결말은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악을 악으로 응징한 국가 권력은 새로운 악을 계속 낳는다는 메시지다.

“결국은 누가 더 부패했느냐의 문제입니다.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지요.”(이원태)

“그래서 지금 내고 싶었습니다.”(김탁환)

성적표는 어떨까. 자신만만했다. 시나리오와 소설 원고의 버전 두 가지를 들고 메이저 영화제작사 등을 찾아갔는데 외면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외려 몇 군데가 동시에 덤벼들기도 했단다. ‘조선 누와르’는 CJ엔터테인먼트와 영화화 계약을 맺었다.

이씨는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책을 팔겠다는 게 목표가 아니다. 원형 스토리의 완결판을 만들겠다는 거다. 영화가 잘 되면 드라마나 뮤지컬 제작사가 찾아오고, 애니메이션으로까지 만들어지는 그런 소설을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