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기적… ‘인터스텔라’를 넘다

입력 2014-12-04 02:47
구약성경의 모세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 개봉 당일인 3일 ‘인터스텔라’를 누르고 예매율 1위에 올랐다. 모세가 군대를 이끌고 왕궁에서 형제로 자랐다가 적이 된 람세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이집트 왕자 신분의 모세가 말에 탄 채 노역에 동원된 히브리인들을 감독하고 있는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역시 리들리 스콧 감독이었다. 세계 최초로 3일 국내 개봉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글래디에이터’(2000년) 등을 통해 거장 감독 반열에 오른 스콧 감독의 연출 솜씨가 여전히 건재함을 입증했다. ‘엑소더스’는 개봉 첫날 예매율 35.9%로 지난달 6일부터 4주째 1위를 지켜온 ‘인터스텔라’(21.3%)를 누르고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라 흥행 돌풍을 예고했다.

영화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히브리 민족의 출애굽(엑소더스), 즉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에 이르는 지난한 여정을 모티브로 했다. 기원전 1300년 이집트 왕궁에서 형제처럼 자랐으나 적으로 맞서게 되는 모세(크리스천 베일)와 람세스(조엘 에저튼)의 대결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드라마틱한 서사, 스펙터클한 영상, 영웅적 스토리가 154분 동안 한눈팔지 못하게 했다.

영화 줄거리는 성경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라오가 된 람세스는 “한 남자가 전투에서 지도자의 목숨을 구하며 그가 훗날 지도자가 된다”는 제사장의 예언을 듣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는 모세 장군의 존재를 두려워한다. 게다가 모세가 아기 때 강보에 싸여 떠내려 왔으며, 이집트인들이 노예로 부리는 히브리 핏줄이라는 비밀을 알게 된다.

유배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평범한 양치기로 살던 모세는 10년이 흐른 뒤 신의 계시를 받고 동족을 구하러 이집트로 향한다. 모세를 제거하려는 람세스와 400년간 노예로 살았던 40만명의 히브리인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려는 모세의 목숨 건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야외 세트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고대 이집트 왕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람세스가 히브리인을 짓밟고 살해하는 가운데 이집트에 닥친 10가지 재앙은 인간의 권력욕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리얼하게 보여준다. 피로 물든 나일강, 파리·메뚜기·개구리 떼의 습격, 퍼붓는 우박 등은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CG)으로 완성했다. 또 대규모 전투신은 4000명의 엑스트라와 스턴트맨이 동원돼 시각적 볼거리를 더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앞에는 무장한 적들이 달려오고, 뒤에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드는 상황에서 맞이하게 되는 ‘홍해의 기적’이다. 이 장면은 카나리아 제도에서 촬영한 다음 높은 파도의 CG를 입혔다. 이집트 군대가 파도에 잠기는 장면은 디테일한 표현을 위해 물탱크에서 별도로 촬영했다. 하지만 영화는 박진감 넘치는 전투보다는 노예해방과 지도자의 성찰에 초점을 맞췄다.

모세가 어떻게 신의 계시를 받아서 히브리인들의 지도자로 성장하는지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스콧 감독은 “모세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억압에 대한 자유의 승리를 담고 있다”며 “모세는 근대적 맥락에서도 혁명가이자 자유의 화신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영웅”이라고 했다. 종교적인 색채를 뛰어넘어 대중성 있는 영화로 평가받는 것은 이런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크리스천 베일은 우리에게 각인된 선지자적인 모세보다는 고뇌하는 지도자의 내면을 잘 드러냈다. 조엘 에저튼이 연기한 람세스는 권위에 집착하며 소심하고 다혈질인 왕으로 극에 설득력을 더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