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수능 참사 엄중 문책해야

입력 2014-12-04 02:30

역대 최악의 물수능을 치르고 난 뒤 성적표를 받아든 많은 대입 수험생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많은 대학들이 가중치를 부여하는 영어, 수학에서 만점자가 예년과 달리 수천명씩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실력과 노력이 올바로 평가받기보다 실수와 운이 더 크게 작용한 시험 결과를 받아들고 공정하지 못한 시험이라고 여긴다. 영어, 수학에서 2∼3점짜리 문제 하나만 틀려도 2등급으로 내려가는 학생이 많다 보니 수시 논술을 잘 쳤다고 생각한 학생들 중 막상 지원 대학의 수능 최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멘붕에 빠진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진학지도 교사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원망과 불만은 입시 당국으로 쏟아지고 있다.

일관성을 잃으면 신뢰도 잃어

수능시험을 둘러싼 혼란과 잡음은 교육부의 대입 관리 능력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난해에는 대학들의 집단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대미문의 수준별 시험이라는 걸 도입해 입시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더니 올해는 변별력을 가리기 무색할 만큼 맹물 시험을 내 수험생들이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올해 수능시험에서 수학B의 만점자는 4.30%, 영어 만점자는 3.37%에 달했다. 이는 영역별 만점자 비율을 1%, 1등급 비율을 4%가 되도록 하겠다고 교육부가 공언한 수능 출제 가이드라인을 어긴 것이다. 사교육 억제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쉬운 수능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 정도로 쉽게 낼 거면 미리 예고를 하고 수험생들이 거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했어야 했다.

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한 지난 6월과 9월 모의고사에서 수학B의 만점자 비율은 각각 1.88%, 0.52%였다. 두 차례 모의고사의 중간쯤에서 만점자 비율을 예상한 수험생과 교사들은 당국의 정책목표인 1%를 훨씬 뛰어넘는 만점자가 수능에서 쏟아지자 아연실색한 것이다. 쉬운 수능이건 어려운 수능이건 상대평가로 환산한 표준점수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현행 입시제도에서 이토록 만점자가 많아지면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은 상실하게 된다. 난이도 조절 실패라거나 널뛰기 정도가 아니라 수능 참사라고 불러야 한다.

평가원장 사퇴로 넘어가선 안돼

연이은 출제 오류는 혀를 차게 한다. 지난해 출제 오류로 그렇게 홍역을 겪어놓고도 올해 또 두 문제의 오류가 나타나 복수정답을 인정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출제위원 선정과 관리, 검증을 누가 어떻게 했기에 오류가 끊이지 않는가.

교육부는 출제 오류의 책임을 물어 교육과정평가원장의 사표를 받았다. 그러나 출제 오류보다 심각한 물수능의 책임은 교육부가 져야 한다.

정책과 제도는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이 있을 때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형성된다. 교육부가 대입제도 3년 예고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도 졸속 변경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 스스로 수능시험을 예측불허의 복불복 게임으로 만들어버렸다.

교육부는 이번 수능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분석해 내년 봄까지 제도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책을 내놓기 전에 원인규명과 책임추궁이 먼저다. 왜 해마다 되풀이되는 출제 오류를 막지 못하고, 수능을 새로운 제도의 실험장으로 얼룩지게 했는지 경위를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상식과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물수능이 출제된 책임소재가 어디 있는지 따져야 한다.

또 어떤 개선책을 내놓든지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이번처럼 4% 넘는 만점자가 쏟아지는 시험을 계속 유지할 거면 그렇게 예고하고 수능 가이드라인을 고쳐야 한다. 그리고 내년에도 올해처럼 맹물시험을 내야 한다. 그러면 수험생들도 그 시험에 적응할 것이다. 대학들도 수능을 주요 선발 수단으로 삼는 대신 다른 변별력 수단을 찾을 것이다.

올해처럼 아무런 예고 없이 수험생들의 허를 찌르는 수능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교육부는 대입 정책에서 손을 떼는 게 낫다. 조변석개식으로 수능시험을 변질시키고 오류투성이 출제를 방치하는 교육부는 교차로에서 우측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하는 차량만큼이나 위험하다.

전석운 국제부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