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담뱃값 올리면서 흡연 경고그림도 붙였어야

입력 2014-12-04 02:50
담뱃갑에 흡연으로 손상된 폐, 심장, 치아 등의 경고그림을 부착하는 방안이 또다시 미뤄졌다. 국회는 2일 담뱃값을 현행보다 2000원 올리기 위한 개별소비세법과 지방세법, 국민건강증진법 개정 수정안 등을 예정대로 통과시켰으나 담뱃갑 경고그림 게시는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흡연 경고그림 조항이 예산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두 가지 핵심 금연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가격 인상과 경고그림 중 하나가 빠진 것이다. ‘반쪽 금연정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이유다.

담뱃갑 경고그림에는 보통 망가진 심장 사진, 폐암 환자의 처참한 모습, 태아의 담배연기 흡입 장면 등을 넣는다. 흡연 욕구를 떨어뜨리기 위한 충격요법인 것이다. 2000년 캐나다가 이를 처음 도입한 뒤 호주 등 70개국이 앞 다퉈 수용했다. 캐나다는 흡연율이 24%였지만 도입 이듬해 22%로, 2006년에는 18%로 감소했다. 특히 청소년 흡연율은 같은 기간 9% 포인트나 떨어져 16%로 급감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도 이 제도를 받아들인 뒤 흡연율 감소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11조는 담뱃갑 면적 50% 이상에 흡연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 메시지를 반드시 부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경고문구보다는 경고 이미지 삽입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5년 FCTC 당사국이 된 이후 여러 차례 경고그림 도입을 위한 입법을 추진했다. 흡연 경고그림 게시 법안은 2002년 이후 11번이나 발의됐으나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 통과가 기대됐으나 역시 실패했다. 전문가들이 담뱃값 인상과 함께 흡연경고 문구·그림 부착 등 비(非)가격정책을 병행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수차례 지적했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흡연규제정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13년 42.1%에 달하는 성인 남성 흡연율을 2020년에는 29%까지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도 OECD 평균 25.4%에 못 미친다. 담뱃값 2000원 인상에다 경고그림 의무화 조항이 함께 가지 않으면 20%대로 흡연율을 낮출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담뱃값을 올리면서 비가격정책에 무관심하다면 정부나 국회가 국민건강에는 관심 없고 세수 증대에만 골똘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고그림 도입이 빠진 담뱃값 인상은 ‘꼼수증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시민단체들은 벌써부터 “담뱃값 세수가 재산세보다 많다”며 가격인상이 결국 서민증세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여야는 관련 법안을 예산안 처리 이후 빠른 시일 내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국회엔 이에 관한 의원입법안만 3건이나 계류 중이다. 국회는 우선 이 법안에 대한 심의부터 서둘러야 한다. 국회가 국민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담배회사의 로비와 후원에만 신경 쓰고 있다는 비아냥을 들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