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오세신] 국제유가 하락 주원인은 수요 둔화

입력 2014-12-04 02:31

지난달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기총회가 열렸다. OPEC은 이번 회의에서 원유생산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날 국제 유가는 6%가량 급락했고 다음날까지 하락세가 이어졌다. 석유시장의 많은 이해당사자들은 OPEC이 더 이상의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산유량을 줄일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유가가 급락세를 보이자 국제 석유시장의 음모론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핵심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고의로 유가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이 현실성을 가지려면 미국과 사우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을 중단케 하고 이란의 핵 개발을 포기하게 하려고 세계경제를 망가뜨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최근 유가 급락은 석유 공급의 증가뿐 아니라 세계경기 불황에 따른 석유 수요 둔화가 큰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 석유 수요 증가량은 작년 절반에 불과하며 올해 공급 증가량에 비해서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석유시장에서는 공급 과잉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유가가 폭락했을 당시에도 문제는 석유 수요 붕괴였다. 그렇다면 공급을 늘려 유가를 낮춘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증가한 것은 유독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2012년부터 미국의 석유 공급은 빠르게 증가해 왔다. 미국의 산유량을 대폭 늘린 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바로 고유가였다. 반면 사우디는 국영 석유기업을 통해 산유량을 전략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최근의 산유량이 과거와 비교해 정상 범위를 벗어난 수준은 아니란 점에서 역시 설득력이 낮다.

음모론은 어떤 현상을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지만 관측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면 그저 우스갯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사우디가 주도한 이번 OPEC의 산유량 유지 결정이 미국의 셰일오일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은 상당한 객관성을 가진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셰일오일만이 아닌 전 세계 비전통 원유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견제라 할 수 있다. 무리한 감산을 통해 유가를 높이면 자국의 시장점유율은 줄고 과실은 비OPEC 산유국들이 가져갈 것이라고 봤을 수도 있다. 또한 이미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 이후 경험한 장기적인 저유가 시대와 가장 최근인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사우디가 배운 것은 경제 상황에 걸맞지 않은 고유가는 세계경제 위기를 불러온다는 것이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말을 줄기차게 언급했을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사우디가 OPEC 총회를 통해 또 한 가지 챙겨간 덤이 있다. 바로 음모론에서 회자됐던 이란에 대한 견제다. 핵 개발 문제로 서방으로부터 원유 수출 규제 등 경제 제재를 받는 이란으로서는 최근의 유가 급락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그동안 주변국인 이란의 핵 개발을 극도로 반대해 왔기 때문에 OPEC의 이번 결정이 은근히 이란의 핵 개발 포기로 이어지길 바랄 수도 있다.

한편 유가 하락으로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의 경우 당분간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수입으로 100% 원유를 조달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다. 물론 유가 하락이 빠른 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원유 수출국인 중동, 중남미, 러시아 등이 경제위기를 맞을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악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문제시됐던 과잉 투자와 자산 버블에 대한 조정 과정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세계경제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 오히려 인위적인 공급 억제로 인한 유가 부양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 유가 하락이 수요 저하에 따른 문제인 만큼 사우디가 말하듯 당분간은 시장에 맡길 필요가 있다.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