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봉홍] 빈용기 보증금 누가 가져가나

입력 2014-12-04 02:20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 동네 슈퍼마켓 앞은 놀이터였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자오락기 앞에 나란히 앉아 게임에 열중하는 아이들, 평상에 둘러앉아 동그란 딱지치기를 하는 아이들, 연탄불에 설탕을 녹여 달고나를 만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아이들 여럿이 유리병에 든 사이다를 나눠 마시고, 빈병을 슈퍼마켓에서 돈으로 바꾸는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 하나가 100원 하던 때라 40∼50원짜리 빈병 몇 개만 있으면 게임을 더 하거나 과자를 사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빈병은 아이들의 쏠쏠한 용돈벌이 수단이었다.

빈병을 돈으로 바꿔준다고 하면 요즘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른들도 대부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도 빈병을 돈으로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 아직 ‘빈용기 보증금 제도’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1985년 도입한 빈용기 보증금 제도는 유리병 회수와 재사용을 위해 제품 가격에 보증금을 포함시켜 빈병을 반환하는 소비자에게 그 돈을 돌려주는 제도다. 우리가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주류와 청량음료의 가격에 보증금이 포함되어 있다. 유리병에 부착된 상표를 자세히 보면 소주병 40원, 맥주병 50원, 사이다나 콜라병 40원의 보증금 액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빈병 보증금을 찾아가지 않게 됐다. 제도가 시행된 이후 보증금이 거의 오르지 않아 빈병을 모으는 수고에 비해 그 대가가 상대적으로 작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빈병을 모아 반환하기보다 정해진 날짜에 다른 재활용품과 함께 분류해서 배출하고 있다. 대형마트가 생겨나면서 동네 슈퍼마켓이 사라져 보증금을 돌려받는 일이 더 번거로워진 원인도 있다.

집 근처에 슈퍼마켓이 있어도 자기네 가게에서 산 물건이 아니라는 등 여러 이유를 말하며 쉽게 보증금을 반환해주지도 않는다. 동네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빈병을 모아 도매상에 반납하면 취급수수료를 받는데 이 취급수수료가 소주병 16원, 맥주병 19원으로 너무 적기 때문이다. 또 일부 도매상에서 음료나 주류 제조사로부터 받은 보증금과 취급수수료를 소매상에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빈병 회수율이 95%로 낮고 재사용률도 85%에 그치고 있다. 재사용 횟수는 약 8회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은 40∼50회, 핀란드는 30회에 이른다.

소비자들이 내고 찾아가지 않는 보증금은 해마다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만 할 뿐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다. 소비자가 부담한 보증금을 주류나 음료 제조회사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지불한 막대한 금액의 보증금이 주류, 음료 생산 대기업의 쌈짓돈이 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미반환 보증금과 취급수수료를 합하면 연간 약 3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린 빈용기 보증금 제도를 다시금 되살리고자 관련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소매점에서 적극적으로 빈병을 회수할 수 있도록 제조사가 부담하는 취급수수료 등을 현실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빈병 보증금 반환을 거부하는 소매점의 경우 소비자들이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파파라치 제도 도입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빈용기 보증금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한 손에는 당근을, 다른 한 손에는 채찍을 들게 하는 셈이다.

빈병 보증금은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교육 재료다. 빈병의 가치가 높아지면 우리 아이들이 예전처럼 유리병의 회수, 재사용을 돕는 자원 순환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률이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최봉홍(새누리당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