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인사가 당국 및 사조직에 의해 좌우되는 ‘신(新)관치 시대’가 열렸다. 정식 인선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당국 내정설이 파다하게 떠돌고 대통령이 졸업한 학교 출신 인사들의 사조직이 인사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전근대적 관행이 우리나라 금융의 경쟁력을 크게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행추위)는 2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회의를 열어 이광구 부행장과 김양진 전 수석부행장, 김승규 부행장 등 3명을 차기 우리은행장 선정을 위한 면접 대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행추위는 5일 3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한 후 최종 후보를 선정해 9일 임시 이사회에서 후보를 확정할 예정이다.
당초 연임이 유력했던 이순우 현 행장은 전날 돌연 연임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의 부실자산을 대거 정리하고 수익성을 크게 높였다. 은행권에 대규모 손실을 초래한 모뉴엘 사태 관련 부실 대출이 우리은행에는 1원도 없다는 점이 달라진 우리은행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금융권은 이 행장의 느닷없는 사퇴를 두고 ‘이광구 내정설’에서 원인을 찾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서금회가 이 부행장을 차기 행장에 내정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최근 대우증권 사장으로 내정된 홍성국 대우증권 부사장도 서금회 멤버이다. 서금회가 금융권 인사를 좌우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금융권에 팽배한 상황이다. 서금회는 정권 초기 잠시 자중하는 듯했지만 정권 중반기에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세 불리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많다. 서금회는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박지우 국민은행 부행장, 이경로 한화생명 부사장 등 화려한 멤버들을 거느리고 있다.
정상적인 인선 시스템을 무시하는 모습은 지난달 28일 마무리된 차기 은행연합회장의 인선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등이 경합을 벌일 것으로 예측됐지만 ‘하영구 내정설’이 불거지며 판세가 출렁였다. 결국 이사회에서 하 전 씨티은행장이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됨으로써 내정설은 사실로 판명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KB금융지주 회장으로 하영구 전 행장을 낙점했다가 이사회에서 통과되지 못하자 제대로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금융 당국은 KB금융지주의 LIG손보 인수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지배구조를 개선하라는 게 당국의 요구지만 속내는 KB금융지주 사외이사진의 전원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달 21일 이경재 KB금융 이사회 의장 등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KB금융지주는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한 상태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금융사들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산하기관 정도로 여기는 것이 신(新)관치 시대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금융노조는 성명을 내고 “금융권 인사가 인맥과 연줄로 엉망이 되고 있다”며 “청와대와 금융당국이 비정상의 정상화와 낙하산 인사 근절을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뉴스 분석-금융권 인사 복마전] 行長·사장에 특정인맥 내리꽂아… 新관치 먹구름 드리워
입력 2014-12-03 03:24 수정 2014-12-03 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