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결국 곪아터진 靑 ‘비선·비밀주의’

입력 2014-12-03 02:42 수정 2014-12-03 09:55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 파문에서 드러나는 여권 내 권력다툼이 박근혜정부의 인사 난맥상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비선(秘線)과 공식 라인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인사 파동의 근원지가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현 정부의 비선·비밀주의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많았지만 개선되지 않았고, 그 결과 곪았던 게 마침내 터졌다는 지적이다.

여야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근혜정부에서는 전후맥락상 설명이 되지 않는 인사가 이뤄지거나 자질 부적격 판정이 나더라도 강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실정으로 알려져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고위 관계자는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올해 초 김기춘 비서실장 등과 가까운 여권 원로 인사를 만났더니 ‘비서실장도 모르는 인사가 이뤄진다’고 개탄을 했다”며 “인사를 중단시켜도 한두 달 뒤에는 임명되는 실정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밝혔다.

현 정부는 지난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유난히 ‘밀봉 인사’ ‘깜깜이 인사’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당시 김용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지명 5일 만에 사퇴했다. 아들 병역면제 및 가족 재산 형성을 둘러싼 의혹 때문이었는데 극도의 보안주의 탓에 공식 라인에서 인사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6월 낙마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도 깜짝 발탁됐지만 언론이 제기한 낮은 수준의 인사 검증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은 자질 논란을 빚었다. 이처럼 주요 공직 후보자에 대한 부실 검증이 반복되자 여야 정치권에서는 “비선 실세가 인사를 전횡하고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실제로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은 바로 이 비선 실세가 정씨이며 그가 ‘청와대 비서관 3인방’과 함께 인사에 깊이 관여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검증을 충분히 할 시간이 없었다”며 “한창 검증 작업을 하는데 인사 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공식 검증 라인을 거치지 않는 인사가 많았고, 이를 둘러싼 갈등이 심상치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정씨와 박지만 EG 회장, 그리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권력투쟁설 이면에는 결국 인사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직전 이명박정부에서도 인사 갈등이 실세 간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으로 번진 바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박 대통령을 향해 인사 문제 등을 둘러싼 폐쇄적인 국정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해당 문건 내용 및 권력투쟁설의 진위 여부, 비선 실세의 실체 등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 등 청와대 사정라인 관계자들이 공식 문건까지 만들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처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엄기영 임성수 기자 eo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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