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은 평양 소학교 6년간 같은 반이였지”

입력 2014-12-03 03:34
2013년 작품 ‘방랑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중섭이(이중섭)는 내 소학교(평양 종로보통학교) 때 친구야. 6년 내내 같은 반이었지.”

100세를 바라보는 노화가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생존 최고령 현역 화가 김병기(98). 그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산증인이다. 평양 갑부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고희동, 김관호에 이은 서양화가 1세대 김찬영(1893∼1960)이다. 그 역시 일본에 유학을 가 김환기(1913∼1974) 이중섭(1916∼1956) 유영국(1916∼2002) 등과 어울렸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였지만 우리 미술계에서는 한동안 잊혀진 존재였다. 1965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커미셔너로 참가했다가 그 길로 뉴욕에 홀연히 정착했기 때문이다.

재미화가 김병기의 화업 60년을 정리하는 회고전 ‘감각의 분할전’이 내년 3월 1일까지 마련됐다. 전시가 개막된 2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그를 만났다. 검버섯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귀공자처럼 희고 단아한 얼굴에 연도까지 하나하나 집어낼 정도로 기억력은 또렷했다.

이중섭은 도쿄문화학원 동기이기도 했지만 평양의 유년시절 서로의 집을 오가던 친구였다. “소학교 때 우리 집은 아버지가 산 영국의 미술잡지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지. 그걸 중섭이랑 함께 보곤 했어요.”

그는 이중섭에 대해 “그림 실력이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추상의 길로 들어선 계기를 물었더니 가족사를 털어놨다.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 대해 반항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시절이 있었어요. 그것이 아방가르드로 가는 계기였고, 아방가르드가 하나의 반역이니까요.”

전시에는 신작 10여점 등 평생 그린 70여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1986년 가나아트에서 21년 만에 첫 귀국 전을 가진 이래 몇 차례 개인전을 했지만 대규모 회고전은 처음이다.

회고전 소감을 묻자 서운하다는 표정이었다. “평생 그린 걸 다 모은 거라고 하면 안 되지요. 앞으로 그릴 작품이 무수히 있는데….”

향후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그동안 흑백 많이 썼지만 앞으로는 색채를 다채롭게 쓰고 싶다”며 “오방색적인 다채로움이 한국에는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지금도 현역이다. 석 달 전에 그린 작품도 출품됐다. 그래서 건강 비결이 궁금했다. “비결은 없다. 정신상태가 중요한 거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뜨뜻미지근하게 사는 건 일종의 죄악입니다. 그래서 조금 적게 먹고 충분히 자고 충분히 운동하고 그렇게 상식적으로 삽니다. 이런 걸 통제하는 게 정신상태이지요.”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