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甲교수 몹쓸 버릇 혼자 앓는 乙학생… 나쁜 교수님들의 성희롱 줄타기 어쩌나

입력 2014-12-03 02:21

지난해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A씨(26·여)는 2일 “지도교수 B씨를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A씨는 아슬아슬 줄을 타는 듯한 B씨의 ‘희롱’ 때문에 지난 2년이 지옥 같았다는 것이다. 그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격려한답시고 어깨를 만지는 일은 예사”라고 했다. 연구실에 둘만 남게 되면 “분위기 좋게 문 좀 닫고 오라”고 하거나 밤늦게 전화를 걸어 “남자친구랑 좋은 시간 보내고 있느냐”고 묻곤 했다고 한다.

A씨는 “성희롱·성추행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엔 너무 애매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며 “대자보를 붙여볼까 생각도 했지만 석사논문 승인을 해주지 않을까봐 찍소리 못하고 참았다”고 털어놨다. 교수의 행태를 외부에 알렸다가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B씨를 계속 지도교수로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증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성희롱이나 추행일 경우 이런 난감한 일을 겪을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최근 서울대 공주대 강원대 등에서 교수들의 학생 대상 성범죄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학점 권한’을 손에 쥔 교수가 학생들에겐 ‘생명줄’처럼 여겨지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존경받는 스승과 제자의 전통적 사제관계를 취업난과 학점을 매개로 한 ‘신(新)갑을관계’가 대신하고 있는 서글픈 분석마저 나온다.

특히 피해자들은 “노골적인 성희롱·성추행은 차라리 증거를 모아볼 여지가 있지만 ‘희롱인 듯 희롱 아닌 희롱 같은’ 경계선상의 행동은 대책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월 지방 국립대 미술과 교수 2명은 가르치던 학생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피해 학생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수업시간에 그림을 고쳐주는 척하며 신체를 밀착시키거나 실수를 가장해 미술 도구로 옷을 들추곤 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변명하고 빠져나갈 구멍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취업 대신 대학원을 선택한 학생들도 비싼 등록금과 학위를 생각하면 교수의 이런 행동에 항거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의 대학원생 C씨는 지난해 초 있었던 교수와의 술자리에서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이 교수는 자리에 모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외모 등급을 매기며 “가장 예쁜 2명을 양쪽에 끼고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말했다. C씨는 억지로 교수와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는 “교수님이 칭찬이랍시고 한 행동인 것 같아 넘어갔지만 불쾌함을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2012년 또 다른 사립대에선 교수가 대학원생들에게 “논문 지도하게 모텔을 예약하라”고 시키고 학생들의 신체 부위를 만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당 교수는 “요즘은 모텔도 시설이 좋아 거기서 논문 지도를 해도 되겠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대학원학생회가 나서서 대자보와 현수막을 붙이며 분노를 표출하자 온라인 학생 커뮤니티에서는 “이제 피해자의 논문은 어떻게 되느냐”는 뒷이야기가 돌았다. “예민한 문제에 휘말렸던 학생을 다른 교수들이 지도하려 하겠느냐”는 걱정이었다. 당장의 피해보다 학점과 취업이 더 절박한 것이다.

교수들의 ‘탈선’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와 13개 대학원 총학생회가 공동 발표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원생의 45.5%는 “교수로부터 언어·신체·성적 폭력이나 차별, 사적 노동 등 부당한 처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들 중 65.3%는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했다.

대학 교수들이 범죄나 비위를 저질러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로부터 파면, 해임, 감봉 등의 징계를 받은 건수는 2010년 129건에서 지난해 185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지난달 27일까지 251건이나 된다. 소청심사위 관계자는 “징계 건수에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이 다수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북부지검 형사3부(윤중기 부장검사)는 학생 여러 명을 성추행한 혐의(상습 강제추행)로 서울대 수리과학부 강모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2일 밝혔다. 강 교수가 지난 7월 서울세계수학자대회를 준비하며 여자 인턴을 추행했다는 사건이 알려진 후 “나도 당했다”는 학내 피해자들의 증언이 속출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