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봉 등탑 철거 자리에 9m 성탄트리 불 밝힌다

입력 2014-12-03 02:10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 성탄트리가 한시적으로 불을 밝힌다. 국방부는 2일 기독교 단체의 요청에 따라 오는 23일부터 내년 1월 6일까지 2주간 애기봉에 성탄트리가 설치된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올해 성탄절 전후로 남북 평화를 기리기 위해 애기봉에 임시 성탄트리를 설치하고 점등행사를 하겠다고 요청했다”며 “종교활동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수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에 포격 위협을 가하는 등 반발하고 있어 이번에도 이를 둘러싼 긴장이 예상된다.

성탄트리는 지난 10월 해병대가 철거한 등탑 자리에 설치된다. 하지만 높이가 18m 정도였던 기존 등탑보다 절반 크기인 9m여서 이전보다는 북한에서의 가시거리가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기존 등탑보다 휠씬 규모가 작다”며 “우리 측의 선전선동이라는 북한 측 주장과 달리 순수하게 종교적인 측면에서 시행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포 해병대는 지난 10월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설치된 지 43년이 되는 등탑을 철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을 의식한 유화조치라는 비난이 일었다. 애기봉 등탑 점등식은 1954년 전방지역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시작됐으나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중단됐다.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등탑 점화식이 재개됐지만, 2012년 북한이 등탑을 대북 선전시설이라며 조준사격 위협을 가해와 긴장이 조성됐다. 이 지역의 일부 주민은 북한 위협을 우려해 성탄트리 설치에 반대하고 있다.

애기봉의 임시 성탄트리 설치에 대해 교계는 진보와 보수 성향에 따라 상반된 시각을 나타냈다.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대승적 차원에서 환영한다는 입장과 함께 정부가 다양한 교계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한쪽 입장만 수용해 남북관계 경색을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국교회언론회 심만섭 사무국장은 “임시방편이지만 애기봉의 등탑 기능 회복을 환영한다”면서 “성탄트리 불빛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화합의 염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장로회총연합회 최내화 총무는 “정부 당국의 갑작스러운 애기봉 등탑 철거는 한국교회를 무시한 처사이며, 반드시 재건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한시적으로나마 성탄트리를 설치하는 것은 다행이며,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랑, 나아가 평화와 통일의 마음을 함께 모으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했다.

반면 교계의 대표적인 진보 목회자 모임인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상임의장 박승렬 목사는 “(임시 성탄트리 설치 결정은) 애기봉 등탑 재건과 관련해 찬반 등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찬성하는 쪽의 입장만을 받아들인 처사”라며 “국민적 기만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현수 박재찬 진삼열 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