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신국원] 세월의 마디

입력 2014-12-03 02:06

벌써 한 해의 끝자락이 다가왔습니다. 이때쯤이면 어떤 식으로든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절기란 사람이 맞춰 살아야 할 창조질서의 리듬이기 때문입니다.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은 모두 인생 만사에 ‘때가 있음(전 3:1)’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인생이 날아간다”고 표현했습니다(시 90:10). 인간은 창조주의 영원성 앞에 설 때에만 자신의 유한성을 진정으로 알게 됩니다. 그것은 인생이 너무 짧다는 아쉬움과는 아주 다른 깨달음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 둘을 착각합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시간도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무한히 돌고 돌 뿐이라는 희랍의 영겁회귀(永劫回歸) 사상을 깨고 새 역사관을 세운 것입니다. 우주에 시작과 끝이 있다는 생각은 성경의 독특한 관점입니다. 세월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의 마디는 인간에게 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 3:11)을 일깨우는 장치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세월은 영적 의미를 새기며 세어야 합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돌아보는 셈법이 필요합니다. 덧없는 세월을 한탄하기보다 어떻게 살았는지를 정산할 날이 올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지혜의 마음으로 지난날을 돌아보면 감사할 일들뿐입니다. 내일은 소망할 따름입니다. 세네카는 인생에 목적을 이룰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할 일을 않고 시간 짧음을 한탄만 한다고 했습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이 시험 전에 ‘1시간만 더 있었으면’ 하며 안달복달하는 법입니다.

영원의 소망을 가진 우리는 인생이 짧다고 불평하거나 안타까워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낭비 없이 지금 하나님 은혜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인생이 짧다고 아쉬워하고 허무하다고 한탄하는 것은 세상도 합니다. 영적 공허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엔 세상의 망년회와 확실히 다른 송구영신예배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본래의 취지는 한 해를 돌아보며 회개와 감사로 내년을 결단하는 ‘언약갱신예배’였답니다.

요즈음 송구영신예배가 본래 취지와 달리 축복기도 위주로 바뀌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탄절을 상인들에게 빼앗기고 송구영신예배마저 기복적인 민속에 내어주면 안 됩니다. 절기는 구속사적 의미로 지켜야 합니다. 인간적 기억은 회한만 있고 전망은 불안뿐입니다. 믿음만이 어제의 인도를 감사하며 내일의 도우심을 소망할 수 있게 합니다. 한 해를 잊어버리려는 망년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회고와 전망으로 회개와 결단을 해야 합니다.

명절의 의미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민속 문화에 담긴 종교성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문화의 손님인 적이 없습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변화되듯이 복음이 들어간 문화들도 모두 변화됐습니다. 복음이 문화를 바꾸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역법이 바뀐 것입니다. AD는 예수님의 연호(年號)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호는 왕의 통치가 물리적 공간인 국토뿐 아니라 시간에도 미친다는 뜻입니다. 왕이 죽으면 끝나는 세상 연호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연호는 지금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날까지 그가 역사의 주권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조금 이르지만 내년은 예수 안에서 소망의 해가 되길 빕니다.

신국원 교수(총신대 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