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미국에서의 정치는 천직이다. 열네 살 때 미국 땅을 밟은 이민 1.5세대로서 소수인종의 권익을 생각하고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청년으로서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대학에서 정치학을 선택했고 로스쿨로 진학했다. 그리고 바로 인턴십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마크 김(Mark Keam) 버지니아주 하원 3선 의원(민주당), 1966년생이니 올해로 48세다. 2009년 초선으로 당선될 때 백인 중산층이 주류인 버지니아주에서 이민 간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주하원의원이 됐다. 버지니아주 하원은 100명, 상원은 40명이다. 하원 중에서 아시아계 2명, 중동계 2명, 라틴계 1명 이외에 나머지 95명이 모두 백인이거나 흑인이다. 상원 40명은 모두 백인, 흑인이다. 그의 꿈은 워싱턴 정치다. 선거직이든 임명직이든 워싱턴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다. 재외동포재단(이사장 조규형)이 주최한 '2014 저명인사 초청 강연·토론회' 참석차 방한한 그를 지난달 26일 만났다.
-초선 선거운동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선 의원이 됐다. 정치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내년이 되면 내가 하원 서열 59위가 된다. 경력이 그만큼 쌓였다는 뜻이다. 지금은 버지니아주에서 돌아다니면 민주당 지지자이든 공화당 지지자이든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정치는 어떤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는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인 커뮤니티의 발전과 영향력 확대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가 나에게는 가장 큰 일 중 하나다. 버지니아주 교과서에 동해 병기가 이뤄지도록 하는 등 지금 내 역할에 아주 만족한다.”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동해 병기가 통과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인들의 목소리가 버지니아주 상하원에서 논의되는 데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동해 병기를 반대하면서 상정조차 강력히 거부했던 스티븐 랜더스(공화) 하원 교육위원장을 설득한 것이었다. 그는 독도 명칭이 왜 논란이 돼야 하는 것을 우선 이해하지 못했고, 논란 중인 타국 간 현안에 대해 어느 한 편을 들어 교과서 내용을 고치는 선례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11세짜리 한국인 입양아가 있다. 우리 아이와 같은 또래여서 정치 바깥에서는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그에게 한국인에게는 독도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며, 점점 커져가는 한인 커뮤니티를 생각해야 한다고 참 많이 설득했다. 아들이 어른이 돼 한인 커뮤니티와의 관계도 생각해 보라고 했다(웃음). 결국 랜더스 위원장이 ‘나는 반대하겠지만 네 뜻을 이해하고 상정시켜 투표하게끔 하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상원에서는 흑인 의원 그룹이 반대하더라. 인종 간 미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버지니아주의 결정이지만 미국 내 교과서 출판사가 많지 않아 결국 다른 주에까지 파급 효과가 있다. 다른 나라끼리의 현안을 주 단위에서 법으로 교과서에 표기하도록 하고 한·일 간 역사 인식의 차이를 가르치도록 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여러 정치적 의미가 있었던 사안이었다.”
-11월에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미국 내 한인 정치인들이 제법 당선됐다.
“주 의원만 10명 정도다. 이밖에 교육위원 등 모든 선거직을 합치면 30명 가까이 된다. 지금은 연방 의원이 없다. 한국이 잘되는 게 한인 정치인들에게는 힘이 된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잘 이뤄지고 경제가 나아지면 바로 한인들의 정치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미국 정치를 얘기해 보자. 요즘 미국도 상당히 여야 대립이 심한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친하고 지원도 많이 하고 있다(그는 오바마 후보 당시 선거캠프에서 일했다). 오바마는 임기 시작할 때 너무 특별하게 시작했다(기대가 많았다는 뜻). 초반에 뚜렷함을 내세웠지만 흐지부지됐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이나 공화당에서 뚜렷한 주장을 하는 그룹이나 의원들이 생겨났다.”
-미국에서 정치인들은 특정 집단이나 이익단체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물론 한국과는 달리 로비스트 활동이 양성화돼 있는데.
“미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성과 투명성이다. ‘내가 뽑히면 이런 걸 하겠다.’ 책임성이다. ‘이 사안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내가 이렇게 하고 있다.’ 이것은 투명성이다. 이 두 가지가 민주 정치의 핵심이다. 이를 전제로 미국 정치에서의 로비는 시민의 권리이다. 수정 헌법 1조에는 종교·언론·출판·집회의 자유와 함께 ‘정부에 대한 탄원의 권리를 막는 어떠한 법 제정도 금지한다’는 문구가 있다. 바로 로비의 권리를 규정한 것이다. 수정 헌법에 나오는 권리는 무조건 보호돼야 한다. 낙태나 총기 소유 등에 대한 찬반도 헌법에서 시작된다. 누구나 정부에 불만이 있으면 청원을 할 수 있는데 누구나 하기 힘드니 워싱턴에 있는 사람들이 대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이번에 방한 목적이 차세대 한인 리더로서 젊은 청소년들을 위한 강연과 토론회이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는가(홍익대 경희대 대일외고 용인외고에서 ‘글로벌 시대 청년들의 꿈과 미래, 그리고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했고 ‘재외동포 대토론회’ 패널로 참석했다).
“내가 정치를 하니 정치에 대해 많이 물어보더라. 정치를 직업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여러 가지 봉사 가운데 하나라고 말해줬다. 또 특권의식을 갖지 말고 대중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젊은이들과 대화해보고 무엇을 느꼈나.
“몇몇 학생들과 얘기해보고 느낀 점이 있다. 그들에게서 비전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나중에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했었다. 대답은 거의가 뚜렷한 목적 없이 ‘대기업에 들어가겠다’였다. 그게 안 되면 무얼 하겠는가라고 물으니 ‘글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기업이나 IT 회사 아니면 그 다음의 선택이 없는 듯했다. 너무 꽉 짜인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도 경기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희망들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 하다 안 되면 저것도 해보고, 그런 기회가 열려 있고 가능성도 있다.”
-아버지가 군목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고 목회 활동도 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현실 정치를 어떻게 하고 있나.
“기독교인으로서 내 삶의 목표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 나와 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면 종교적이지 않은 세속적인 일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예수님이 보여주는 교훈은 이것 ‘서로 사랑하라’ 아닌가. 가난한 이웃들,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조그만 일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끝에 가서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정치적으로 내 편을 만들기보다는 적을 만들지 않는 데 더 중점을 둔다. 돌아다니면서 내 편을 만들려고만 하면 자연히 적이 생기지 않겠는가.”
만난 사람=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마크 김은 누구?
서울에서 태어난 마크 김(48)은 4살 때인 1970년, 군목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월남으로 갔다. 아버지는 사이공에 유일한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어려서 교회에서 살면서 배운 봉사 정신은 정치인 마크 김의 근본이기도 하다. 9살 때 서울로 돌아왔지만 한국말이 어눌한 그를 주변 아이들은 놀렸다. 월남 철수 마지막 비행기를 타지 못한 아버지는 1년간 월맹군에 억류됐다 돌아왔다. 그런 마크 김을 보고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 선교사 생활을 계속한다.
14살 때 미국으로 다시 이주한 그는 대학(UC 어바인)과 로스쿨(UC 헤이스팅스)에서 공부하면서 약자들을 위한 정치를 결심한다. 로스쿨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의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민주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정무직으로 연방 방송위원회와 연방 중소기업청 변호사로 일했고, 이후 6년 동안 민주당 중진 리처드 더빈 상원의원의 법률 및 수석보좌관을 지냈다. 대형 통신회사 버라이즌 부사장도 역임했으며, 버락 오바마 후보캠프에서 소수인종 선거 전략을 짜는 역할을 했다. 내년에 버지니아주 하원 4선에 도전한다.
[인人터뷰] “‘동해 병기’ 위해 하원 교육위원장 끈질기게 설득”
입력 2014-12-03 0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