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은 청와대 문건 관련 수사 좌고우면 말라

입력 2014-12-02 02:19 수정 2014-12-02 09:55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의 작성자 박모 경정이 1일 오전 근무지인 서울의 한 경찰서로 출근했다가 다시 휴가를 내고 돌아가고 있다. 이동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일 ‘비선실세’ 논란 및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주문한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문을 조기에 수습하지 못할 경우 경제활성화를 비롯한 집권 3년차 국정과제 수행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최악의 경우 때 아닌 레임덕을 불러올 수도 있다. 현 정권 출범 후 불거진 초대형 스캔들을 발 빠르게 진화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발언이 야당과 언론이 제기하는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여부보다 청와대 문건 유출 경위 수사에 비중을 두고 있어 걱정스럽다. 이제 막 수사에 착수한 검찰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문건 유출의 경우 국기문란 행위로 이에 연루된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을 공직기강 해이로 인한 청와대 내부 문건의 불법 유출로 규정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 “관련자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며 언론보도가 부적절했음을 지적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이 실제로 없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이런 발언을 접한 검찰이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수사에 임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수뇌부는 지금 국민들이 온통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여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기밀이 포함될 수 있는 청와대 문건의 유출도 큰 문제이긴 하지만 이번 파문의 본질은 누가 뭐래도 민간인인 정윤회씨와 박지만씨의 국정개입 여부다.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과 친동생인 이 두 사람 간 권력암투설의 진위를 철저히 조사해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형이 정부 정책이나 인사에 개입함으로써 국정문란을 야기했던 불행한 우리 정치사를 반복할 수는 없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 현철씨가 국정에 개입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박관용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현철씨를 외국으로 보내라”는 건의를 받았으나 묵살하는 바람에 큰 화를 불렀다. 국정에 개입하는 비선조직은 숨기려고 들면 점점 더 커지는 법이다. 방치하면 국정농단으로 번진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 검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이구동성으로 유출 문건의 내용이 ‘찌라시’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진위를 밝혀낼 수 있는 곳은 검찰밖에 없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야당에선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것이라며 비아냥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와 관련된 몇몇 사건에서 ‘정치 검찰’의 오명을 벗지 못한 탓이다. 검찰이 또다시 대통령 심기를 살피며 소극적으로 수사에 임한다면 상설특검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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