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성자 (8) 3남2녀의 행복도 잠시 “조지프가 물에 빠졌어요”

입력 2014-12-03 02:21
1990년 막내아들 홍식이의 백일 때 가족사진. 남편은 출장 중이라 함께 찍지 못했다.

줄곧 자폐증세가 있는 아들 조지프를 키우는 데 매달려 있는 동안 남편 사업은 점점 번성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말리부 해변으로 이사했다.

어느새 다섯으로 늘어난 3남2녀의 우리 아이들에게, 특히 첫아들 조지프가 뛰놀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진심으로 “좋다, 아름답다”는 말을 꺼내 본 적이 없었다. 다섯 아이를 낳고 기르는 힘겨움에 지쳐 있었고, 언제 어떻게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는 조지프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리부 해변 집에선 크고 작은 모임이 열리곤 했다. 아름다운 해변에 위치한 우리 집이 평소 남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각종 파티나 결혼식, 영화촬영 등을 위한 장소로 제공됐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조지프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모임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이어졌다. 자폐아인 조지프를 그대로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걱정 때문에 마음 놓고 아이를 소개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미8군사령관을 지내고 우리와 오랜 기간 친분이 두터웠던 킹 커프만 사령관의 결혼식이 있었던 그날까지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날 나는 장소를 제공한 안주인으로서 신경 써야 할 일이 꽤 많았다. 결혼식에 차질이 없도록 아침부터 서둘렀다. 조지프는 집 정원 한쪽에 있는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좋아하는 수영을 하며 행복해 할 조지프를 떠올리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며 조지프에 대한 걱정을 접으려 할 때쯤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인근 병원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조지프란 아이가 물에 빠졌어요.”

“조지프가 왜요? 조지프가 물에 빠져요? 조지프는 수영을 할 줄 아는 아이인데….”

“바다에서 정신을 잃고 떠내려가는 것을 윈드서퍼들이 발견해 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고 하네요. 지금 조지프는 병원에 있고요.”

오, 하나님.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윈드서퍼들이 발견했다면 조지프가 집에서 수영하다가 인근 해변까지 떠내려갔다는 얘기가 된다.

“살아 있나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이 질문에 병원 관계자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나를 더 두렵게 했다.

“조지프가 물에 빠지다니. 내 아들 조지프가 병원에 있다니. 조지프, 죽으면 안돼, 조지프.”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차가 있는 쪽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결혼예식을 돕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실성한 여자처럼 됐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하객들은 넋 나간 내 모습에 사태를 파악하고는 모두 그 자리에서 조지프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차에 타 시동을 걸자마자 내 머릿속에 조지프와 함께했던 날들이 영화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에게 첫아들이라는 기쁨을 안겨준 조지프, 머나먼 타향과 시집생활에 방긋 웃어주며 시름을 덜게 하던 조지프. 그러나 얼마 안돼 자폐 판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소외된 조지프의 모습이 아프게, 너무도 아프게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조지프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신음 소리 같은 탄식을 하며 죄인됨을 고백하고 있었다.

“저는 조지프를 보내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는 어미였습니다. 수백 번도 아이에게 화를 냈습니다. 심지어 조지프의 생명까지도 내 맘대로 하려 했던 죄 많고 못난 어미였습니다.” 그 순간 조지프가 자폐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돼 병원에 갔다가 병원 고층에서 내려다보며 조지프와 함께 뛰어내릴까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