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무섭고 가죽은 욕심나고”라는 옛말이 있다. 요즘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태도를 두고 생긴 속담 같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당사자인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을 제외한 절대다수 국민들의 합의로 여겨지고 있다. 새정치연합도 국민의 합의를 따름으로써 민심을 얻고 싶긴 한데, 개혁으로 불이익을 보게 될 공무원들과 그 가족 400만명의 반발이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낸 꾀가 “연금 개혁은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개혁안에는 반대한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서 신중히 논의하자”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말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라 함은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기구를 가리킨다. 정부·여당 개혁안의 국회 상정마저 저지하며 자신의 안은 내놓지 않고 있는 새정치연합은 이 기구가 구성되면 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국가대사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속사정을 모르면 새정치연합의 주장들이 모두 공자 말씀이다. 이해당사자를 개혁에 동참시키는 게 민주주의 기본이고 최선이다. 국가 백년대계라 할 연금 개혁을 군사 특공작전 하듯 몰아붙이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방해로 관련 공청회도 못 열리는 상황인데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기구에서 과연 합의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참고토록 하면 될 일이다. 또 군사 특공작전 하듯 한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연금 개혁 문제는 기금 고갈과 관련하여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시도됐고 미봉적이나마 이뤄지기도 한 정말 오래된 국가 과제다. 새정치연합이 수권정당임을 자처한다면 이에 대한 준비가 충분히 이뤄져 있어야 한다.
옛말에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고 했다. 필자에겐 개혁을 추진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일 만큼 이 문제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없다. 그래서 어느 일방의 편을 들 생각이 없다. 국가 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으니 연금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옳아 보인다. 연금은 고용주인 정부가 공무원에게 약속한 임금이요 퇴직금인데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항변도 일리가 있다.
다만 새정치연합이 연금 개혁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놓고도 깔고 뭉개면서 정부·여당을 총알받이로 앞세우는 식의 비겁한 꼼수를 쓰는 건 수권정당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야당이라는 것을 방패삼아 집권당의 등 뒤에 숨어 책임 없이 선심공약은 남발하면서, 국민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고통이 수반되는 요구는 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그 같은 정당에 국가 경영을 믿고 맡기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새누리당은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제법 집권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집권당의 버팀목이랄 수도 있는 공무원들의 반발과 그에 따른 불이익을 무릅쓰고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개혁의 칼을 빼든 것은 용기 있고 책임 있는 자세라 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수권야당임을 자처한다면 공무원들의 눈치나 보면서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 정부·여당의 개혁안에 반대한다고만 하지 말고 당당히 대안을 내놓고 공론에 부쳐야 한다. 내년이면 총선 분위기에 휩싸일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400만표를 의식한 여야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호랑이가 무서우면 가죽 욕심을 접어야 하듯, 반발이 무서워서 해야 할 일을 못 하겠으면 집권 욕심도 포기하는 게 옳다. 또 자신이 호랑이 잡을 용기가 없으면 호랑이 잡으러 가는 정부·여당의 꽁무니에 붙어 못 이기는 척 따라가기라도 하라. 가죽과 물려갈 위험을 정부·여당과 반분하겠다는 각오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개혁은 애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는 야당으로서는 무슨 시대착오적 망발이냐 할 것이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게 이해당사자의 저항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속성에 비추어 타당한 측면이 없지 않다.
백화종 논설고문
[백화종 칼럼] 수권 야당임을 자처한다면
입력 2014-12-02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