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靑‘정윤회 문건’파문] 정씨-靑10인 정기회동 여부 판명이 ‘1차 열쇠’

입력 2014-12-01 03:50 수정 2014-12-01 10:03
부슬비가 내린 30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망원렌즈로 들여다본 청와대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문건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청와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정윤회(59)씨 ‘국정개입 의혹’의 진실은 결국 검찰 수사를 거쳐 가려지게 됐다. 검찰은 1일부터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대한 수사에 들어간다. ‘비선(秘線) 측근의 국정 농단’ 등 문건 내용의 진위와 문건 작성 경위, 문건 유출 내막을 규명해야 한다. 검찰로서는 박근혜정권 2년 만에 비선 권력의 존재 여부를 밝혀야 하는 ‘뜨거운 감자’를 맡게 됐다.

①문건 내용 진위: 정윤회와 십상시 정기모임 실체 있나=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수봉)가 맡을 가능성이 크다. 형사1부는 지난 7월 정씨가 주간지 시사저널을 고소한 사건을 수사 중이다. 시사저널은 올 3∼7월 ‘비선라인 인사 개입설’ ‘정씨의 박지만 미행설’ ‘정씨의 승마협회 압력설’ 등을 보도했다. 검찰은 지난 8월 정씨를 고소인 자격으로 비공개 소환조사했다. 박지만 EG 회장에게도 서면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형사1부는 ‘만만회’(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박 회장, 정씨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명칭)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을 8월 28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검찰은 박 의원 공소장에 ‘박지만과 정윤회는 일반인들로 공직 인사 등 국정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적었다.

명예훼손 수사 절차상 검찰은 우선 언론에 공개된 청와대 문건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는 ‘(정씨가)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2회 정도 서울 강남 모처에서 소위 십상시(十常侍) 멤버들을 만나 VIP(대통령)의 국정운영, BH(청와대) 내부 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제시했다’고 돼 있다. 청와대는 문건에 거론된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에게 ‘문의’하는 수준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검찰은 정씨와 등장인물들의 행적을 파악해 실제 ‘회동’이 있었는지 가려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자 전화통화 내역 분석, 모임 장소로 지목된 음식점 탐문, 소환조사 등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모임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 모임 성격과 그 자리에서 오간 대화 내용에 대한 조사도 당연한 수순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문건에는 정씨의 당시 발언 내용까지 담겨 있다.

②문건 작성 경위: ‘비선 권력’ 문건 왜 작성했나=정씨 동향 문건은 지난 1월 6일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로 작성됐다. 행정관이던 박모 경정이 직속상관이던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 지시에 따라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내용은 다분히 정씨를 ‘겨냥’하고 있다. 두 사람이 왜 위험을 감수하고 정씨의 동향을 감찰해 보고서까지 만들었는지도 검찰 수사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박 경정을 소환해 문건 작성 경위와 정보 출처를 조사하는 절차도 불가피하다.

문건의 정확한 성격 규명도 불가피하다. 세계일보는 이 문건을 ‘청와대 감찰보고서’라고 규정한 반면 청와대 측은 “‘찌라시’ 풍문을 모은 동향보고 수준”이라고 맞서고 있다.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는 이 문건과 박지만 회장의 관련설도 제기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검사 시절인 1994년 마약 수사를 하다 박 회장과 친분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회장이 조 전 비서관 측을 활용해 정씨를 포함한 비선 라인을 견제하려 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박 경정은 지난 3월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박 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문고리 권력’을 견제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경정이 박 회장을 직접 찾아가 만났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③문건 유출 내막: 배경에 권력 다툼 있나=박 경정이 작성한 문건이 어떤 경로로 유출돼 언론에 보도됐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박 경정이 지난 2월 경찰에 복귀할 때 두 박스 분량의 기밀 서류를 빼돌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청와대 문건은 들고 나온 게 전혀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박 경정이 아니라면 누가 기밀인 청와대 문건을 빼돌렸는지도 확인돼야 할 대목이다. 검찰이 문건 작성과 유출 경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설로만 떠돌았던 청와대 내부의 ‘권력암투설’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다.

정권의 내밀한 부분이 조사 대상인 만큼 검찰로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전반에까지 수사가 확대되긴 어려우리란 전망이 벌써 나온다. 한 검찰 간부는 “청와대발 폭탄이 갑자기 날아들었다. 이런 수사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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