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바닥을 모른 채 폭락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동네 기름값은 그야말로 ‘요지부동’이다. 내려도 찔끔 내리는 게 고작이다. 소비자들은 국제 유가와 따로 노는 기름값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 소비자가 ‘봉’이냐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H주유소. 기름을 넣은 회사원 이모(36)씨는 터무니없이 비싼 휘발유값에 불만을 쏟아냈다. 이씨는 “차에 주유등이 들어와 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주유소에서 주유했는데 휘발유 가격이 ℓ당 2200원이 넘어 황당했다”며 “최근 급락한 국제 유가를 생각하면 주유소에 우롱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ℓ당 2245원이었다. 여의도 내 주유소 5곳 중 3곳은 모두 ℓ당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넘었다.
국제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감산 합의가 불발되면서 줄줄이 하락세를 탔다. 2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거래일보다 무려 7.54달러(10.2%) 폭락한 배럴당 66.15달러에 마감했다. 그러나 국내 휘발유값은 사실상 꿈쩍 안 했다. 유가정보 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보통휘발유 가격은 28일 1711.74원에서 29일 1.79원, 0.1% 하락한 1709.95원을 기록했다. 일부 지역은 오히려 소폭 상승한 곳도 있다.
소비자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지역별로 들쭉날쭉한 가격 차이다. 30일 서울의 주요 주유소를 확인한 결과 가장 비싼 보통휘발유를 파는 곳은 관악구 신림로와 구로구 시흥대로에 위치한 주유소로 ℓ당 2298원이었다. 가장 싼 곳은 ℓ당 1616원인 강서구 개화동로의 주유소로 두 주유소 간 차이는 ℓ당 682원이었다. 보통휘발유 전국 최저가를 기록한 대구 남구의 한 주유소(ℓ당 1589원)와 비교하면 ℓ당 가격 차이는 무려 709원이나 난다. 주유소가 밀집해 경쟁이 치열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다.
반면 국회 인근 서울 여의도나 정부부처, 대기업이 밀집한 종로구, 중구 등에는 임대료가 비싸고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고객이 많아 고가 주유소가 몰려 있다. 회사원 김모(48)씨는 “국회의원처럼 세금으로 기름 넣는 사람은 서민들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유소들은 주요 정유사로부터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을 한 달에 두세 차례 구입하는데, 구입 가격은 싱가포르 국제제품가에 연동돼 매일 변한다. 이 때문에 주유소별로 가격 차이가 생긴다. 주유소는 제품을 구매한 뒤 유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져도 구매해 온 가격을 고려해 쉽게 판매가를 내릴 수 없다. 최근에는 가격 경쟁을 하는 주유소들이 늘면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손해를 보면서 물건을 파는 주유소도 생겨나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은 정유업계에도 직격탄이 된다. 원유를 도입한 뒤 정제해 판매하기까지 40∼50일이 소요되는데 이 기간에 유가가 급락하면 재고 가치도 덩달아 떨어져 실적에 재고평가 손실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국제유가 10.2% 폭락 이후 국내 ‘체감 지수’ 취재해보니… 0.1% 하락
입력 2014-12-01 03:46 수정 2014-12-01 1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