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이맘때쯤으로 기억한다. 가을비가 내리는 11월 오전에 젊은 여성과 엄마로 보이는 중년 부인이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차트를 자세히 보기도 전에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교수님, 제발 제 딸 좀 살려 주세요, 결혼도 해야 하고, 아기도 낳아야 하고….” 서울 모대학병원에서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자궁을 들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는 필자를 찾아온 환자 엄마의 절규였다.
필자가 처음 산부인과 진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자궁암(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은 거의 45∼60세에서 많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여겨졌다. 즉 아이를 다 낳은 여성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20∼30대 가임기 젊은 여성에게서 꽤 자주 볼 수 있는 질환이 되어 버렸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자궁경부암은 1999년 이후 연평균 약 4%씩 줄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대 여성에서는 매년 거의 5%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성생활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어려지고 젊은 여성들의 음주, 흡연 등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병에 걸리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절망에 빠져 있는 환자들에게 지난 일들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의사 입장에서는 현재 환자 상태가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다. 가장 적절한 치료법으로서 임신을 원하는 자궁암환자 등에게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적절한 치료법 이야기가 나왔으니 치료율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암치료의 치료율은 완전관해와 부분관해를 포함한 반응률로서 평가된다. 그런데 소위 화학요법이라고 칭하는 약물들의 치료율을 보면 약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부분관해를 포함한 치료율이 어떤 약물은 30%, 어떤 약물은 50% 정도 된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나머지 50∼70%의 환자는 치료가 되지 않는 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암치료가 어렵다는 말이고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도 몇 개월 생명 연장의 근거로 또는 50% 미만의 치료율을 보이는 약물들을 신약으로 또는 새로운 적응증에 대한 치료제로 승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광역학 치료는 그 치료율이 화학요법과 비교해 볼 때 높은 편이다. 물론, 암의 종류나 병기의 구분에 따라 치료율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필자가 시술하고 있는 광역학 치료는 그 동안의 치료 경험의 축적과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로 치료율이 거의 80∼90%에 이른다. 실로 놀라운 치료율이 아닐 수 없다.
9년 전 절망 속에서 필자를 찾아왔던 환자는 광역학 치료 후 정기적 추적관찰 중 완치되어 결혼해 정상 임신과 만기 출산 후 현재 건강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필자는 산부인과 의사이기는 하지만 남자여서 아기를 낳을 수는 없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출산의 위대함을 감히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가임기의 젊은 암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는 감사의 소식을 전해 올 때면, 마치 내가 아기를 낳은 것 같은 경이로움을 느끼곤 한다.
안타깝게도 아직 임신과 출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 광역학 치료는 대중화되지가 않았다. 아마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초기 치료가 시술 후 약 4주 정도 빛을 차단하며 생활해야 한다는 불편한 단점이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광민감제가 개발되면서 이제는 이 광역학 치료가 반드시 대중화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오늘도 가져본다.
한세준 조선대학교병원 산부인과학(부인종양학) 교수
[한세준의 빛으로 치료하는 암] “전 아직 서른도 멀었는데”… 자궁경부암 진단 젊은 여성의 탄식
입력 2014-12-01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