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 회장의 미술사랑과 열정… “그림은 작가와 관람객의 희로애락이 담긴 삶”

입력 2014-12-01 02:42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이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연작 중 ‘최후의 만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한복 입은 예수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사랑을 전하는 한국적인 성화(聖畵)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김태형 선임기자
이중섭의 ‘황소’(1953)
박수근의 '우물가'(1953)
김기창의 '태양을 먹은 새'(1968)
장욱진의 '까치와 아낙네'(1987)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이 개관 2주년 기념으로 소장품 전을 내년 2월 15일까지 연다. 1부 ‘거장’ 전에는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천경자 이우환 등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획을 그은 작가 36명의 대표작이 출품되고, 2부 ‘오, 홀리나잇!’ 전에는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이 걸렸다. 한국미술의 흐름을 살펴보고, 연말연시 예수의 사랑을 돌아보게 하는 전시다.

전시가 개막된 지난 28일 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57)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은 작품을 일일이 둘러보고 있었다. 운보의 ‘예수의 생애’ 앞에 선 그는 2012년 개관 이후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겪은 감회가 새로운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운보가 청각장애를 딛고 믿음으로 그린 이 작품은 ‘수태고지’ ‘아기예수의 탄생’ ‘사마리아의 여인’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못 박힘’ ‘부활’ 등 30점으로 이뤄졌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안 회장은 “제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2001년 한 미술애호가에게 20억원을 주고 샀어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이틀 동안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잠을 못 이뤘지요. 한 지인이 사흘 후 10억원을 보태 30억원 줄 테니 팔라고 했지만 팔지 않았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30년간 그림에 빠져 살아온 저의 최고 애장품인데 어떻게 팔겠어요?”

안 회장과 그림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업사원이던 1983년 태풍 포레스트가 몰려왔을 때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어느 날, 비를 피하기 위해 액자 가게의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쇼윈도를 통해 그림 하나가 보였다. 이중섭의 ‘황소’였다. 그림에서 충만한 에너지와 결연한 의지를 느낀 그는 7000원을 주고 샀다.

“가게를 나오는데 주인이 그건 인쇄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림과 인쇄물도 구별할줄 몰랐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림 얘기를 하면서 약속했지요. ‘돈을 많이 벌어서 언젠가 당신에게 이 그림의 원작을 사 주겠소’라고.” 이후 사업을 벌인 안 회장은 밤낮없이 일해 돈을 벌었고, 2010년 경매에서 ‘황소’ 원작을 35억6000만원에 낙찰 받았다. 아내와의 약속을 30여년 만에 지킨 것이다.

그는 돈이 생기는 대로 그림을 구입했다. 근대 작가부터 최근 블루칩 작가까지 수백점을 모았다. 이번 전시 출품작의 시가는 350억원에 이른다. 평생 모은 명화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미술관을 세웠다. 미술관 뒤편으로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별채였던 석파정(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이 연결돼 있어 운치를 더한다.

안 회장은 미술관 건립 후 “재산 가치를 높여 매각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미술관을 지은 후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이게 뭐하는 건가’ 하는 회의도 들었어요. 건립비용만 420억원이 넘는데, 380억원에 팔라는 사람도 있었고요. 1000억원 정도면 모를까 고심도 했지만 금세 마음을 돌렸습니다. 30년 준비해서 세운 미술관을 쉽게 매각할 수 있겠습니까. 사업은 유한하지만 문화는 무한하잖아요.”

그에게 그림은 무엇일까. “작가와 보는 이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 말 정치권력의 중심지였던 석파정에 문화를 녹여 모든 사람이 쉼과 여유를 얻는 열린 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