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두고 있는 산모 김지현(가명)씨는 아기가 태어날 때 탯줄과 태반에서 얻게 되는 혈액인 제대혈이 향후 아기가 혹시 모를 난치병이 발생했을 때 치료에 쓰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제대혈을 보관해 준다는 한 민간업체에 10년간 보관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든다. 김씨는 “제대혈 보관에 수백만원을 쏟아 부었는데, 과연 이것이 안전하게 보관이 되는지, 더불어 실효성은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임신부들이 출산하면서 아기가 태어날 때 백혈병이나 뇌성마비 등 혹시 아이에게 발생할지 모를 난치병 치료에 쓰고자 수백만원의 돈을 들여 민간업체에 ‘가족 제대혈’을 보관하지만 값비싼 가격에 비해 정작 활용도가 낮다는 지적이다.
제대혈은 신생아 분만 시에 분리된 탯줄·태반에 존재하는 혈액을 일컫는다. 제대혈 조혈모세포 이식을 통해 기존의 골수이식을 보완 대체해 혈액질환 등을 치료하며, 세포치료제 개발 등 연구자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조혈모세포는 혈액구성세포인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을 만드는 어머니세포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3년 말 현재까지 전국 16개 제대혈은행에 보관된 제대혈은 총 44만6290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가족만 사용할 수 있도록 민간보관업체와 계약해 관리하는 ‘가족제대혈’이 40만5500건으로 전체 제대혈은행의 약 90%를 차지했다. 가족뿐 아니라 타인의 질병치료와 의학연구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기증제대혈’은 4790건에 불과했다.
전체 제대혈 보관의 90%를 차지하는 가족제대혈은 민간보관업체에 대부분 맡긴다. 이들 민간업체의 보관비용은 비싼 편이다. 제대혈은행 보관 기간에 따라 비용은 달라진다. 보통 보관기관 15년, 20년, 평생보관 등을 기준으로 한다. 제대혈은행 민간업체 상위 5개사의 홈페이지 내 보관비용을 살펴보면 15년 보관 기간을 기준으로 A브랜드는 125만원, B브랜드는 135만원, C브랜드는 135만원, D브랜드는 130만원을 제시하고 있다. 보관 기간이 길어질 경우 비용은 더 올라간다. 20년 보관이면 평균 200만∼300만원이다. 일부 업체는 제대혈의 보관비용을 할인해서 소비자들을 끌어들인다. 참고로 국내에는 보건복지부가 위탁한 서울특별시제대혈은행, 차병원기증제대혈은행, 녹십자제대혈은행, 보령아이맘셀뱅크제대혈은행 메디포스트㈜제대혈은행, 아이코드제대혈은행, 베이비셀제대혈은행, 드림코드제대혈은행, ㈜라이프코드제대혈은행 등 16개의 제대혈은행이 있다.
문제는 고가의 비용을 들여 민간업체에 제대혈을 보관하지만 정작 활용하는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실제 전체 민간업체에 엄마들이 맡긴 가족제대혈 보관량 40만5500건 중에서 치료목적의 이식용으로 쓰인 것은 179건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지난해 치료목적으로 쓰인 이식건수는 2건에 불과했다.
일부 의료계 전문가들은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 가면서까지 제대혈을 보관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선 아이가 백혈병 등의 난치병에 걸렸다고 해도 실제로 보관한 제대혈을 활용해 치료할 확률이 극히 적다는 것이다. 오일환 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기능성세포치료센터 소장)는 “실제 엄마들이 수백만원을 들여 제대혈 보관에 투자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해 치료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아직까지 제대혈을 활용해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은 극히 제한적이며, 이마저도 학계에서 임상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이가 만약 제대혈을 보관한 지 20년 후에 성인이 돼서 난치병에 걸렸다고 했을 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확률도 거의 희박하다는 게 일부 학계의 의견이다. 오 교수는 “제대혈을 보관하는 업체가 보장하는 제대혈의 유핵세포의 수는 보통 3억∼4억개 수준이다. 보통 30kg 기준으로 필요한 유핵세포수가 4억∼5억개다. 아이가 만약 성인이 되면 각종 난치성 질환 치료에 필요한 유핵세포는 2배에 달한다. 결국 사용가치가 높지 않은 셈”이라고 밝혔다. 김민영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도 “세포 양이 적어서 어릴 때는 활용도가 높을 수 있어도 신체가 자랐을 경우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하다”며 “그러나 향후 세포 배양 등의 기술이 향상되면 사용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백혈병이나 희귀질환 등 일부 유전적 소인이 작용하는 질병의 경우 자가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게 되면 병이 재발하거나 질병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김동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만약 백혈병 등의 질병이 발생한 사람이 자신이 보관한 제대혈을 활용해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다시 이식받았을 경우 질병이 재발할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이럴 때는 공공제대혈을 통해 기증받은 타인의 제대혈이 치료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대혈 보관이 미래를 위한 좋은 대비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민영 교수는 “아직까지 제대혈을 활용한 치료가 만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 출생한 이후에 얻을 수 있는 줄기세포 중 가장 어린 세포로서 향후 치료적 효력을 내는 데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며 “미래의 자신의 신체 기능을 위해서 때로는 가족을 위해서 보관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제대혈 보관 실효성 의문… 가족제대혈 40만5500건 중 이식용 활용은 179건 불과
입력 2014-12-01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