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⑥ ‘크로스리나’ 제작한 오카리나 연주가 박봉규 집사

입력 2014-12-01 02:37
최근 서울 관악구에 있는 오카리나 교습소 ‘오카리나 숲’에서 만난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 집사인 박봉규씨. 박씨는 십자가 모양의 오카리나 ‘크로스리나’ 제작자다. 그는 “크로스리나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선교의 도구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란 인턴기자
박씨가 만든 다양한 색깔의 크로스리나. 허란 인턴기자
'크로스리나'라는 악기를 아시는지. 한 손에 들어오는 앙증맞은 크기에 빛깔이 고운 십자가 모양인데 자세히 보면 곳곳에 작은 구멍이 11개나 뚫려 있다. 위에 뚫린 구멍에 숨을 불어넣으면서 손가락으로 다른 구멍들을 여닫으면 다양한 음(音)이 흘러나온다.

크로스리나는 일명 '흙피리'로 통하는 오카리나를 십자가처럼 만든 것이다. 제작자는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 집사인 박봉규(41)씨. 박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오카리나 연주자 중 한 명으로 오랜 연구 끝에 지난 9월 세상에 크로스리나를 내놓았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악기를 만든 것일까. 최근 서울 관악구에 있는 박씨의 오카리나 교습소 '오카리나 숲'을 찾아가 인터뷰했다.

박씨가 오카리나를 처음 잡은 건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88년이었다. 부산 동의공고 관악합주반 단원이던 그는 하굣길에 한 악기점에서 오카리나를 처음 봤다. 박씨는 악기점 주인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 악기는 뭔가요? 이건 어떻게 연주하는 거죠?”

“일본에서 직수입한 오카리나라는 악기야. 악기 케이스 안에 연주법 적힌 책도 있어.”

박씨는 3만원을 주고 오카리나를 샀다. 원래 연주하던 튜바를 꾸준히 연습하면서 틈틈이 오카리나를 연주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됐다.

“음대에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뜻이 강해 신학대에 입학했죠. 1991년에 부산신학대(현 경성대 신학과)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음악 공부를 계속 하고 싶더군요. 이듬해 공군 군악대에 입대했고 제대한 뒤 부모님을 설득해 95년 대전의 배재대 음악학과에 들어갔습니다.”

튜바 연주자였던 박씨가 오카리나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건 99년부터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는 대전에 오카리나 학원을 차렸고 이듬해엔 오카리나 교본을 출간했다. 2005년엔 서울로 상경해 한국오카리나음악협회를 창립했다.

“오카리나에 저의 신앙을 접목해 보자는 생각을 처음 한 건 2010년이었어요.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님이 십자가와 관련된 설교를 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오카리나를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때부터 틈틈이 종이에다 십자가 모양의 오카리나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박씨는 연구를 거듭했다. 처음 구상한 크로스리나의 모습은 각이 지고 투박했다. 하지만 매끈한 모양새의 ‘손 십자가’ 등을 참고해 디자인을 조금씩 수정했다. 십자가 아래엔 여타 오카리나와 다르게 호루라기 소리를 낼 수 있는 구멍을 뚫었다. 사용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지난해 세계적인 오카리나 제작사인 대만 TNG에 크로스리나 제작을 의뢰했다. 그리고 올 9월 크로스리나를 세상에 내놓았다. 오카리나 대부분이 그러하듯 크로스리나의 음역대는 넓지 않다. ‘도’에서 한 옥타브 위의 ‘미’까지 연주가 가능하다.

“십자가는 아픔과 희생의 상징이지요. 그런데 이런 십자가에 숨을 불어넣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게 아이러니하면서도 근사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악기를 만들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성물(聖物)인지 실감했어요.”

박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에 단기선교를 하러 갈 때면 항상 오카리나를 지참했다. 현지 아이들을 상대로 연주회를 연 뒤 오카리나를 나눠주었다. 지난 9월 필리핀 세부의 한 한인교회를 방문했을 땐 당시 막 세상에 나온 크로스리나 30개를 현지 교회에 선물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다양한 나라에 선교활동을 하러 갔어요. 음악활동을 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선교를 하자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크로스리나를 개발한 뒤엔 생각이 바뀌었어요. 음악으로 선교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가장 먼저 달려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겠다고.”

크로스리나 1개의 가격은 3만5000원이다. 박씨는 "크로스리나의 판매 수익금은 전액 선교 활동에 쓸 생각이다. 하나님이 크로스리나를 통해 어떤 역사를 만드실지 궁금하다"며 웃었다. 그는 내년 1월 31일 광림교회 장천아트홀에서 필리핀 선교 후원금 모금을 위한 콘서트도 연다.

"흙으로 만든 악기이기 때문에 크로스리나엔 다른 관악기에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있어요. 연주할 때 손끝에 전해지는 진동의 느낌도 좋죠. 앞으로 크로스리나를 세계 곳곳에 전하고 싶습니다. 크로스리나를 보급하는 일은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십자가를 전하는 일이니까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