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현 정부 비선 실세로 불리는 정씨를 둘러싼 의혹을 ‘정윤회 게이트’로 명명하고 진상조사단까지 구성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질 낮은 정치공세’로 일축하고 있으나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로 일축하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야당의 주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작성했다는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다. 청와대는 김기춘 비서실장도 구두로 보고받아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언론보도 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시중의 풍문을 다룬 찌라시에 나온 내용을 모아 놓은 것으로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내용이 사실이 아닐 뿐 문건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문건에는 정씨가 김 실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과 수시로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씨의 국정개입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만만회’ 의혹 때도,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기사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정씨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어떤 공직도 맡은 바 없는 정씨가 문건에 있는 대로 비서실장 퇴진을 공작했다면 이보다 더한 국정농단이 없다. 청와대가 당사자의 말만 듣고 사실무근으로 결론 낸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범인의 말만 듣고 무죄 판결을 내린 것에 다름 아니다. 이름이 거론된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청와대 비서관 등 8명이 문건을 보도한 언론사 사장, 편집국장 등 6명을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한 이상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신속하고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필요하다면 특별검사 임명도 마다해선 안 된다. 그만큼 사안이 중대하다는 말이다. 국회도 검찰에만 맡길 게 아니라 운영위원회 소집 등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찌라시 수준이든 아니든 청와대 문건이 아무런 제재 없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건 청와대 기강이 무너졌다는 방증이다. 얼마나 많은 문건이 유출됐는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국가기밀이 유출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의 헬스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청와대 행정관 인적사항조차 국가기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던 청와대가 비밀 문건을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현 정부 들어 ‘7인회’ ‘만만회’에 이어 또다시 비선조직 국정개입 논란이 불거진 가장 큰 책임은 측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통령에게 있다. 문건 내용의 사실관계와 유출 경위를 밝히는 것 못지않게 청와대를 쇄신하고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박 대통령의 분명하고도 확고한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 검찰 고소와 대변인 해명으로 청와대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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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2-01 02:27 수정 2014-12-01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