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좀 멀긴 했지만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있는 한 공립학교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알파벳 테스트를 해볼까요?”
선생님이 단어를 부르면 그 단어를 받아 적는 알파벳 테스트를 조지프에게 실시한다는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게 가능해? 말도 안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처음엔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고 보세요. 조지프는 글을 쓸 수 있게 될 겁니다. 또 책도 읽을 수 있고 덧셈과 뺄셈, 곱셈, 나눗셈까지 하게 될 테니까요.”
믿기지 않았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운 조지프가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셈까지 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기쁜 일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조지프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조지프는 특수학교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기억력이었다. 영어 단어를 배우고 실시한 스펠링 테스트에서 조지프는 거의 만점을 받았다. ‘단어 찾는 게임’ 책을 갖고 다니며 게임을 즐기곤 했다. 조지프가 쓴 알파벳 글씨체는 매우 아름다웠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쓰는 조지프의 영어 필기체는 누가 봐도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조지프의 작은 능력은 자폐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은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조지프의 학교생활은 어려운 점도 적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중학교에 들어가 보니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학생인지 모를 정도로 덩치가 큰 아이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 분위기를 감지 못한 조지프는 그날따라 혼자 화장실에 갔다가 누군가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어느 학생이 조지프를 발견해 선생님께 알렸고,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다. 머리 뒷부분을 열두 바늘이나 꿰매는 상처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나는 너무 황당해 조지프에게 다그쳐 물었다.
“누가 그랬어, 조지프? 누가 널 이렇게 했어?”
아무리 물어도 조지프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물음에도 대답할 줄 모르는 조지프라면 화장실에서 맞을 때도 “하지 말라”는 저항 한마디 못했을 게 뻔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선생님은 궁여지책으로 학교에서 제일 말썽 피우는 아이들 몇을 불러 놓고 조지프에게 물었다.
“이 중에 너를 때린 사람이 있니? 그 아이를 가리켜 보렴.”
그러나 조지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으로 가리킬 줄도 몰랐다.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눈치마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딴전을 피울 뿐이었다.
나중에 조사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학교 안의 갱 멤버가 되기 위해 조지프를 때려 눕힌 사건이라는 게 드러났다. 갱 그룹 그들만의 원칙에 따라 갱 멤버가 되려는 학생 한 명이 조지프를 지목하고는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무지막지하게 때린 것이었다. 이런 일까지 일어나자 조지프의 앞날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갔다. 자신을 때린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조지프가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참 막막했다.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로서의 안타까운 날들이 계속됐다. 생각날 때마다 조지프의 건강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 조지프에게도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이 믿음을 붙잡고 주일예배 피아노 반주자로 섬겼다. 찬송을 하다 보면 잠시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워진 나를 발견하곤 했다. 사막 위를 걷다가 샘을 발견해 목을 축이는 것과 같았다. 고난 중에 차마 열리지 않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역경의 열매] 정성자 권사 (7) 뛰어난 기억력·글씨체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입력 2014-12-02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