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인권엔 국경 없다

입력 2014-12-01 02:30

“교화소 생활이 너무나 힘들어 자살하려고 바늘을 삼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 한 모금도 주지 않고 말라 죽이기 때문이죠.” “교화소에선 사람이 죽어도 사망자가 30명에 이를 때까지 모아뒀다가 마치 떡시루처럼 쌓아 고압전류를 흘려 태웁니다.”

지난 27일 국회에서 ‘통일과 북한이탈주민의 역할’이란 주제로 열린 국제 세미나에 참석한 탈북여성 두 명의 증언이다. 흘러내리는 눈물로 증언은 이따금 끊겼다.

이뿐 아니다. 북한의 참혹한 인권 실태는 무궁무진하다. 공개 총살을 비롯해 종교적 이유로 사형에 처하는 경우, 목에 밧줄을 건 뒤 트럭을 이용해 질질 끌고 다니는 경우, 쇠창살에 사지를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리는 경우, 여성의 자궁이나 유두를 불로 지지는 경우, 똑바로 설 수도 없고 누울 수도 없는 비좁고 불결한 독방에 장기 수감하는 경우 등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들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들이 북한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객관적 증거들도 넘쳐난다.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숨지는 어린이도 적지 않다. 북한 TV에 종종 등장하는 평양시민들을 제외한 상당수 북한 주민들은 생지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개개인들이 의지를 갖고 살아간다기보다 그냥 살아져야만 하는 암울한 처지가 아닐까 싶다.

유엔이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매년 보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 주민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 해마다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요지부동이다. 주민들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억압 없이는 3대 세습체제를 유지할 자신이 없는 탓이다. 그에 맞춰 유엔의 대응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2005년부터 해마다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에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라는 표현이 들어간 적이 없었으나 지난 21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통과시킨 결의안에는 북한 인권 상황을 ICC에 넘기도록 권고하는 새로운 내용이 담겼다. 김정은 정권이 인권개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유엔의 압박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가 북한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규탄하는 유엔의 외침은 우리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지난 24일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안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북한인권증진법안을 법안심사소위로 넘겨 심의에 들어간 것이다. 북한인권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된 것은 처음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론 부끄러운 일이다.

북한인권법안은 2005년 8월 국회에 처음 제출됐다. 현재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인 김문수 전 의원이 대표 발의자다. 김 위원장이 내놓은 법안의 핵심은 ‘국가는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 주민이 헌법상 기본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인권대사,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기획단,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둔다’는 것 등이다. 지금까지 여야 의원들이 내놓은 10여건의 북한인권 관련 법안들도 유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 민감한 사항도 아닌데 여야 이견 때문에 한 번도 상정되지 못한 채 모두 폐기됐다.

그 원인을 따지자면 새정치연합 책임이 크다. 여당이었던 노무현정부 때부터 너무 소극적이었다.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보다 북한 당국을 자극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좀 과장되게 해석하면 북한 주민들이야 어찌되든 북한 정권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궤변이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새삼 강조하지만 인권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 인권은 주권보다 앞서는 가치다. 더욱이 우리와 한 핏줄인 북한 주민들이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고통에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그들의 절규를 외면해선 안 된다. 여야의 북한인권법 연내 제정은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2004년 미국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제정할 당시처럼 여야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 더욱 좋겠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