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권혜숙] 담배

입력 2014-12-01 02:10

‘전국 360개 고을마다 1만명 넘는 흡연자가 있으니, 한 사람이 담배 피우는 비용을 하루 1문으로 쳐도 360일로 계산하면 1년에 1260만냥의 거금이 된다. 온 나라에 흉년이 들어도 충분히 구휼할 수 있는 큰 재물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리가 ‘기연다(記烟茶)’라는 책에 쓴 글이다. 몇 모금의 연기로 날려버리기에는 담배로 인한 국가의 재정적 손실이 너무 크다는 이 주장, 200여년 전의 것이건만 어째 흡연을 세수 확대와 연결시킨 지금 정부의 발상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한때 담배 끊은 남자와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자는 독한 사람이니 사귀지 말라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담배 못 끊은 사람이 자기관리 못하는 의지 박약자로 몰리지만. 나라 곳간 때문이든 건강 때문이든 담배의 역사는 흡연자와 비흡연자, 정부가 뒤엉킨 수세기에 걸친 싸움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 책 ‘사물의 민낯’은 1600년대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무라드 4세의 ‘담배와의 전쟁’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변장을 하고 직접 거리를 다니며 흡연자를 색출해 무려 3만명의 목을 벴다고 한다. 이런 탄압을 겪고도 살아남은 오스만튀르크 흡연자들의 후예인 터키는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성인 남성 흡연율을 뽐내는 골초국가가 되었으니, 결국 흡연자들이 승리한 셈이다.

최근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전자담배’라는 뜻의 ‘vape’를 뽑았다는 소식에 뒤이어 전자담배의 발암물질이 일반 담배보다 10배나 많다는 일본의 연구 결과가 날아들었고, 지난 28일에는 여야가 담뱃값을 2000원 올리는 데 합의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주말엔 담배 사재기가 시작됐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이들 기사에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을 보니 ‘담배 사놨다가 한 개비씩 팔면 그게 창조경제’ ‘내리는 건 비와 눈뿐이구나’ 같은 시니컬형과 처량형이 있었다. 그중 눈에 띈 ‘더 올려봐라, 내가 끊나’. 심정은 이해하나 이런 반응은 다이어트에 성공 못한 여자가 보기에도 찌질하다.

권혜숙 차장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