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팬들에게 ‘농구대잔치’는 아련한 추억이다. 수많은 스타를 배출하며 한때 프로야구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했지만 지금까지도 ‘농구대잔치’ 때의 인기만 못한 게 현실이다. 수많은 팬들을 열광시켰던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충희와 김현준=농구대잔치는 1983년부터 시작됐다. 초기 농구대잔치의 인기를 견인한 선수는 ‘슛쟁이’ 이충희(55)와 한살 아래인 ‘전자슈터’ 김현준이다. 두 선수의 소속 팀이 현대와 삼성이었기에 재계 라이벌 구도까지 더해져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이충희는 은퇴 후 지도자가 돼 1997년 창원 LG 창단 감독을 맡아 팀을 정규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충희는 2007년 대구 오리온스, 2013년 원주 동부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모두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성적부진으로 중도하차했다. 지금은 야인으로 지낸다.
김현준은 수려한 외모와 특유의 성실함으로 여성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는 삼성전자를 1984년과 1987년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이끌었고, 농구대잔치 사상 첫 5000득점과 6000득점을 달성하기도 했다. 23년 동안의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친 후에는 수원 삼성에서 코치를 지내는 등 최고의 선수에서 최고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준비했다. 그러나 지도자의 꿈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채 1999년 10월 출근을 위해 타고 가던 택시가 중앙선을 넘어 달리던 차와 정면충돌해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삼성은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시키고 매년 김현준 장학금을 수여하며 ‘비운의 스타’를 기리고 있다. 최고 슈터라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이충희와 김현준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다. 김현준이 사망했을 때 이충희가 문상도 오지 않아 농구 선배인 김동광(61) 감독이 노발대발했다는 일화가 있다.
◇허재와 기아 전성시대=1989년 중앙대를 졸업한 허재(49)가 기아에 입단하면서 현대-삼성 양강 구도가 깨지고 ‘농구대잔치’의 기아 전성시대가 허재-강동희(48)-김유택(51)으로 이어지는 ‘허동택 트리오’는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허재는 이때 활약으로 ‘농구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허재는 선수 때처럼 프로에서도 2005-2006시즌부터 전주 KCC 지휘봉을 잡아 챔피언결정전 우승 두 차례, 준우승 한 차례를 기록하며 ‘명불허전’임을 입증했다. 강동희는 원주 동부 사령탑을 맡아 2011-2012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지난해 승부조작 가담 사실이 드러나 농구계에서 영구 퇴출돼 안타까움을 샀다. 김유택은 모교 중앙대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한편 허재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인 임달식(50)은 여자농구로 자리를 옮겨 국내 프로스포츠 전인미답의 5시즌 연속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일궜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신한은행 지휘봉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허재와 임달식은 1991년 3월 부산에서 열린 현대와 기아자동차의 농구대잔치 챔프 결정전에서 주먹다짐을 벌이며 사상 최악의 난투극을 펼쳤다. 당시 허재는 6개월, 임달식은 1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연세대·고려대 ‘오빠부대’=농구대잔치 인기의 절정은 1993-1994시즌 연세대가 농구대잔치 역사상 첫 대학팀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을 때다. 실력과 함께 외모도 출중했던 연세대 선수들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았다. ‘람보슈터’ 문경은(43)을 필두로 ‘산소같은 남자’ 이상민(42), ‘코트의 황태자’ 우지원(41) 등 수많은 선수들이 여자 팬들을 울렸다. 맞수 고려대에서도 ‘에어’ 전희철(41)과 ‘플라잉 피터팬’ 김병철(41), ‘매직 히포’ 현주엽(39)이 큰 인기를 끌었다.
문경은은 프로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하다 2011년 서울 SK 감독대행을 시작으로 지도자에 입문했다. 문경은은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농구대잔치 대학생 스타 중 처음으로 프로농구 팀 사령탑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2012-2013시즌에는 만년 하위팀 SK를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상민은 2010년 삼성에서 은퇴 후 미국 뉴저지로 가족과 함께 지도자 연수를 떠났다가 지난해 한국에 왔다. 이후 삼성 코치를 맡았고, 올해부턴 삼성의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우지원은 현재 해설위원으로 옛 동료들의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국보급 센터’ 서장훈(40)은 지난해 부산 KT에서 은퇴한 후 현재 연예 프로그램에서 맹활약 중이다.
고려대 출신 전희철은 아이러니하게 맞수 연세대 대표 선수였던 문경은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 SK 코치로 문경은을 보좌하고 있다. 김병철은 고양 오리온스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군림했고, 그 팀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과 함께 고려대 농구를 이끌었던 현주엽은 2011년 억대의 투자 사기를 당하는 불운을 겪었지만 올 시즌부터 해설위원을 맡으며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농구대잔치 그때 그 ★들 지금은 어디서 뭘 할까
입력 2014-12-02 02:52 수정 2014-12-02 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