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은 중국에서 기자의 날(記者節)이었다. 간호사의 날, 교사의 날과 함께 직업과 관련된 3대 기념일 중 하나다. 올해 중국에서 개최됐던 가장 큰 국제 행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전 중국이 요란을 떠는 사이 조용히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중국 관영 매체들은 기자의 날을 맞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기자관(記者觀)을 열거하며 기자의 본분을 다시 한번 각성시켰다. 시 주석은 사회적 책임감이 강하고, 공부하고 혁신하는 기자를 선호한다고 한다. 혐오하는 기자는 돈만 밝히고 자료만 보고 겉핥기식으로 취재하고, 보도 준칙에 어긋나는 허위 보도를 하는 기자다. 각지에서는 제15회를 맞는 기자의 날 표창대회 등도 열렸다. 유관 기관은 “기자는 정의를 추구해야 하며 여전히 ‘당과 인민의 목구멍과 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기자가 오로지 ‘당과 인민의 목구멍과 혀’ 역할만 했을 때가 있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이후 문화대혁명을 거치는 마오쩌둥의 집권 시기였다. 당시 중국의 어두운 면을 보도하는 것은 공산당의 약점을 붙잡는 반혁명 행위였다. 덩샤오핑 등장 이후 80년대 기자들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1989년 6·4 천안문 사태와 함께 짧은 황금기는 막을 내렸다.
90년대 이후 인터넷 언론의 등장과 웨이보나 웨이신 등 개인 매체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예전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지만 언론에 대한 통제는 여전하다. 특히 시 주석 체제 등장 이후 더욱 강화되는 모습이다. 언론과 인터넷 포털 등에 대한 검열은 더 강해졌고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유명 블로거, 기자들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체포됐다. 올 1∼2월 전국의 기자 25만명을 대상으로 ‘기자증 갱신시험’이 처음 실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불합격 땐 2014년판 기자증이 발행되지 않는다. 지난 6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각 언론사에 통지문을 보내 “(사전에 등록된) 영역과 범위를 벗어난 취재보도와 기자·지국이 광전총국 동의를 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비판 보도를 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중국 헌법 35조는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여행 시위의 자유가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언론 출판의 자유가 국민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언론 출판의 자유는 단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고 그는 바로 무산계급의 최고 지도자”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헌법의 보장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공산당과 정부 당국의 지시, 지령에 의해 수시로 통제된다. 최근 중국 언론을 보면 공무원들의 부정부패와 관련된 각종 심층 보도가 줄을 잇는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한다. 공무원의 부정 비리 보도는 반부패라는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느 한순간에 중국에서 고관들의 부정 비리 보도가 사라질 수 있다. 당의 방침 내에서만 ‘자유’는 허락된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 자유가 국가기관의 지시로 자유롭게 농락당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를 법률로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신문법이다. 한국에서도 1987년 민주화 물결 속에 신문법이 제정됐다. 사실 중국에서도 신문법 제정운동은 이미 30년 전 시작됐었다. 1984년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사회과학원이 주축이 된 ‘신문법연구실’은 신문법 초안까지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언론의 기본적 사명은 비판과 견제다. 하지만 중국공산당과 시 주석을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는 곳은 중국에서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중국공산당 정권이 스스로의 자정 능력이 있다며 체제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비판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이 영원할 수는 없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특파원 코너-맹경환] 중국에 신문법을 許하라
입력 2014-12-01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