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 강렬한 자주색의 절규… 중진화가 안창홍 전시회 ‘뜰’

입력 2014-12-01 02:52
안창홍 ‘뜰’(캔버스에 유화).

서울의 대형 주상복합 빌딩의 갤러리에 꽃그림이 들어왔다. 화가는 1970∼80년대 민중미술의 한 축을 차지했던 중진화가 안창홍(61). 퀭한 얼굴의 가족사진 시리즈로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살아가는 가족사를 고발했던 그 화가다. 그런 그가 웬 꽃그림?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역시 그가 지난 1년간 변신을 시도하며 새롭게 들고 나온 주인공은 예쁜 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맨드라미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 갤러리아 포레 빌딩 지하 2층 페이지갤러리에서 내달 28일까지 선보이는 ‘안창홍의 뜰’전에 흐드러지게 핀 맨드라미는 예쁘다기보다는 처연하거나 고통스럽다.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 흙을 퍼 나르고 정원을 일구며 봉숭아, 사루비아 등 여러 꽃을 심어 관찰했다는 그의 가슴에 어느 날 와 박힌 꽃이 맨드라미다.

그는 지난 28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맨드라미는 식물인데도 동물 같다. 거름을 주면 정말 왕성하게 자라고, 꽃잎을 부러뜨리면 살점처럼 뚝뚝 뜯어지고, 시들 땐 참혹하게 진다”며 “그런 맨드라미를 볼 때 마다 나는 정육점에서 동물의 살점을 잘라다 들에 던져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안창홍이 그린 맨드라미는 비대칭의 형상이나 강렬한 자주색이 절규하는 것 같다. 나이프를 사용해 압정을 뿌려놓은 것처럼 날카로운 표면감도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 개발한 표현법이다.

작가는 “지난 1년 동안 국내서는 세월호 참사, 해외서는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의 아동학살 등 얼마나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났느냐”며 “세상사의 통증을 작품에 오버랩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장독대 주변에 소박하게 피는 꽃쯤으로 표현되는 게 맨드라미다. 그렇지만 예술가의 시선을 통해 이렇듯 시대를 고발하는 언어로 쓰이는 꽃이 됐다. 소재는 인물이든, 풍경이든 안창홍에게는 모두가 시대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지향성이 일관된다는 게 그가 갖는 힘인 것 같다. 자신의 풍경을 스스로 ‘연출된 풍경’ ‘조작된 풍경’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특히 출품된 20여 작품 중 화폭이 3.5m가 되는 맨드라미 대작은 사람을 압도한다. 화폭 속 맨드라미는 도발하듯 꼿꼿이 서 있거나, 폭풍우에 꺾여 쓰러져 있거나, 활짝 피었거나 시들어 있다. 마치 사람의 자세 같아 무리 지어 핀 맨드라미는 이 시대의 고통 받는 인간 군상처럼 느껴진다.

전시에는 대작 뿐 아니라 다소 예쁘게 그려진 소품들도 나왔다. 작가는 “상업 화랑에서 전시하는 걸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웃었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