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美 셰일오일’과 전면전… 유탄 맞은 러시아

입력 2014-11-29 02:26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27일(현지시간) 원유를 감산하는 대신 현재의 생산량(하루 3000만배럴)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미국 셰일오일에 대한 견제 차원이다. 사실상 셰일오일과의 ‘점유율 전쟁’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 등의 산유국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타격을 입는 나라들이 주로 서방과 대척점에 있는 나라들이어서 ‘저유가’는 자연스레 국제정치 역학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OPEC, 사실상 ‘셰일오일과의 전쟁’ 선언=셰일오일은 셰일가스가 매장된 셰일층에 굳어진 채 지하 퇴적암층에 존재하는 원유를 말한다. 주로 미국과 캐나다에 많이 묻혀 있다. 전에는 채굴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기술발달로 유가가 배럴당 60∼80달러 정도이면 채산성이 있다.

최근 몇 개월 사이 북미에서 셰일오일이 많이 생산되면서 지난 6월만해도 배럴당 106달러(서부텍사스산 원유 기준) 하던 유가가 현재 70달러 안팎까지 주저앉은 상태다.

OPEC는 당초 유가가 급락해 생산량을 줄여서 유가를 떠받치려 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중동의 부국들이 반대해 무산됐다. 이런 배경에는 자칫 OPEC가 감산할 경우 미국 셰일오일의 점유율만 높여줄 것이란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영국 BBC 방송은 분석했다. 때문에 가격을 좀더 낮춰 미국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의 채산성에 압박을 가하고, 그들의 생산량을 줄이게 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OPEC 차원의 점유율을 더욱 탄탄하게 해놓고 나중에 유가를 올려도 나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아울러 유가가 좀 더 빠지면 아시아 등에서는 사용량이 늘어 산유 부국들은 그런대로 저유가 악재를 견뎌낼만하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나라별 희비 엇갈려, 러시아 가장 큰 타격=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그동안 쌓아둔 재정이 충분해 저유가 상태가 오래 지속돼도 버텨낼 여력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은 재정지출 과다로 앞으로 저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특히 러시아는 재정수입의 70% 정도를 원유에 의존하고 있어 향후 복지축소 등의 정책 변화도 예상된다. 이를 반영하듯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OPEC 회의 결과 발표 뒤 3.6% 급락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쾌재를 부르게 됐다. 러시아가 재정압박에 시달릴수록 제재의 효과는 더 커지기 때문이다. 러시아 재무장관인 안톤 실루아노프는 “저유가와 경제제재로 인한 러시아의 연간 피해액이 각각 1000억 달러(110조원)와 40억 달러(44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표적인 반서방 국가들인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도 재정 압박이 더 심해지면 국내 정치가 불안해지고, 국제사회 내 목소리도 작아질 것으로 보인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아시아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은 저유가로 인해 경제성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미국도 재정수입에서 차지하는 원유 의존도가 높지 않아 저유가로 인해 피해가 거의 없을 것으로 분석됐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