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곧 그 사람이다. 말을 통해 화자의 특질이 그대로 규정된다. 그래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말은 그 사람이 보는 세상을 나타낸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를 확장하면 세계가 넓어진다’고 정의했다. 그는 또 ‘언어가 본질에 우선한다’고도 했다. 철학자 김경집은 그의 책 ‘인문학은 밥이다’에서 말의 올바른 사용이 올바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사람과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모두 말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들이다.
요 며칠 박근혜 대통령의 격한 표현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규제들을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규제 철폐에 대한 강력한 소신을 정적의 목을 자르는 단두대에 비유한 것이다. 규제가 얼마나 미웠으면 끔찍하고 섬뜩한 단두대를 인용했을까 싶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사로는 소통과 품격 면에서 모두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박 대통령의 격정적 언사는 처음이 아니다.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 “진돗개는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 “불타는 애국심을 가져 달라” 등 소신이 지나치게 담긴 발언들이 이미 몇 차례 보도된 바 있다.
대통령은 가장 영향력 있는 국어 선생님이다. 그가 내뱉는 한마디는 국어 교과서의 어떤 단어나 문장보다 힘을 갖는다. 머리 위에서 큰 칼을 내려오게 해 사형수의 목을 잘라 죽이는 도구인 단두대는 어느새 탈규제와 자유시장의 상징어로 사용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표정은 늘 단호하다. 눈빛은 레이저로 비유되기도 한다. 인생 역정과 정치 노정이 만들어낸 아우라는 범접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에 말까지 세다. 자의라면 스스로 말의 본새를 좀 살펴야겠고, 참모들의 원고에 바탕을 둔 발언이라면 그 참모를 잘라야겠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대통령의 말
입력 2014-11-29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