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집사님이 당하는 시련과 고통을 다 살펴보고 계십니다. 모든 시련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온 전도사님, 예언의 능력을 가졌다는 그 전도사님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상처, 내 안에 가득했던 ‘혼자’라는 생각을 그 전도사님이 터치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도 내용이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전도사님은 마치 내 일상을 다 꿰뚫고 계신 듯했다. 아들의 장애로 인한 가족관계의 갈등, 엄마와 며느리로서, 또 아내로서 겪는 아픔까지 하나하나 짚어주고 계셨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다 아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돕길 원하시는 영적 아버지이심을 기도 가운데 설명해 주시니 정말 거짓말처럼 힘겨운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비둘기 같은 평화가 밀려왔다. 그것은 평생 처음 느껴보는 영혼의 안식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리 내어 울어댔다.
“참 좋으신 하나님, 고맙습니다. 전도사님, 감사합니다.”
그날 나는 작은 기적을 체험했다. 첫아들의 병을 알고 난 뒤부터 갖게 된 마음의 병, 막혔던 마음의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날마다 나와 함께 계시는 분임을 그날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기도하는 전도사님 입에서 축복의 약속이 쏟아졌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입니다. 인내하면서 견디어 나가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이 끝없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무너지고 있는 나를 위해 천사를 급히 보내셨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 전도사님이 방문한 이후 나는 다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수 있게 됐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내 곁에 계신 그 하나님을 입을 열어 찬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애 판정을 받은 조지프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됐는데도 성장의 징표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란다는 증거인 언어발달이 현저히 더디게 나타났다. 급기야 아이에게 혼란을 없애기 위해 한국어 대신 영어로만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영어로 대화를 해도 조지프와의 소통은 쉽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언어로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이다. 행동도 어디로 튈지 몰랐다. 어쩌다 한번씩 이웃집에 놀러가도 맘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 변기에 이물질을 자꾸 집어넣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변기가 막히기 일쑤였다. 문제행동을 반복하면서도 때론 천연덕스럽게 밥을 잘 먹는 조지프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님, 이 아이를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고 우리의 사명을 이뤄가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다 쳐도 저 아이의 삶은 뭔가요. 저 아이가 저렇게만 사는 건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 아닌가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못 찾고 있었다.
‘아득한 미로 속에서 혼돈과 무질서의 언어를 갖고 사는 듯한 조지프. 하나님은 과연 이 아이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나 뜻을 갖고 계시긴 한 것일까.’
뿌연 안개처럼 걷힐 줄 모르는 이런 의문들 때문에 조지프를 바라보는 내 눈엔 수심이 가득했다. 조지프에게 좋다는 건강식품이나 영양제도 수소문해 먹였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조지프의 성장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학교는 보내야 했다. 의사 말대로 이런 아이에게는 좋은 교육만이 좋은 예후를 가져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역경의 열매] 정성자 (6) “첫아들의 병마저 하나님 계획 속에 있습니다”
입력 2014-12-01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