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이 그렇게 높다는데 에볼라 발병국에 가려는 의사가 있을까요?”
“저라면 가고 싶습니다.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서울의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지난달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시에라리온 파견 의료진에 자원했다. 27일 다시 그와 통화했다.
“1진 2진 3진 다 결정됐답니다. 오리엔테이션도 했고요.”(전문의)
“선생님도 가시나요?”(기자)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아마 가시는 분들도 알리려 하지 않을 겁니다.”(전문의)
그와의 통화는 이렇게 짧았다. 좀 더 긴 얘기를 해준 건 보건복지부 관계자였다.
“파견자 명단은 대외비예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들었는데, 거기 직원 한 명이 에볼라 발병국에 갔다 왔대요. 그 사실이 아들 유치원에 알려지자 유치원에서 아들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했답니다. 감염 우려가 있다면서.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 생길까봐 우려하는 거죠.”
에볼라 파견 의료진이 꾸려졌다. 30명 중 민간 의사·간호사는 15명이다. 다음 달 13일 10명이 먼저 출국한다. 그런데 누가 가는지 얼굴도 이름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절대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며 “21일 잠복기까지 지난 뒤 파견자들 의사를 물어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파견자들이 이렇게 하는 건 이들을 ‘잠재적 감염자’로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감염병을 공부한 내 소명이라며 지구 반대편 에볼라의 땅으로 떠나는 사람들. 격려와 기도 속에 떠나야 할 이들이 얼굴과 이름을 감춘 채 쉬쉬하며 ‘서글픈 출정’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대표’ 의료진의 이런 사정을 복지부는 2009년 신종플루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당시 치료를 전담하던 대학병원 의사의 신상이 공개됐다. 그 의사의 자녀는 “부모에게 신종플루를 옮아 우리 아이에게 옮기면 어떡하냐”고 항의하는 학부모들 탓에 학교에 가지 못했다.
지난달 미국에선 에볼라 환자를 돌보고 귀국한 의료진을 ‘격리’하는 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해당 의료인은 일방적 격리는 ‘인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그러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의 영웅이다. 그들의 사기를 꺾는 건 우리 스스로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비슷한 성명을 발표했다.
현재 국내에선 파견 의료진을 위해 이런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이 없다.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정부와 파견자를 비난하거나 겁박하는 내용이 많다. ‘파견해서 못 들어오게 하면 되겠다’ ‘누가 지원했는지, 가족과 국민 생각은 안 하나?’ ‘다 같이 죽자는 소리냐’….
전문가들은 이를 ‘집단 과잉반응’이라고 진단한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벌어지지 않은 일에 집단 패닉 현상이 나타나고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 사회적 공감대와 시민의식이 약한 상태임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조영일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비’만 강조하는 정부의 방어적 자세가 막연한 공포와 과잉 반응을 더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나쁜 여론→소극적 정보 공개→부정확한 정보 양산→나쁜 여론 악화’의 악순환을 우려하는 것이다.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현지 정보를 정부가 정확히 전달하고 악화된 여론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수정 박세환 기자 thursday@kmib.co.kr
[생각해봅시다] ‘얼굴 없는’ 에볼라 의료진… 파견인력 본인·가족 불이익 우려에 철저히 비공개
입력 2014-11-28 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