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관리가 국력] 伊 기관들, 정부 지원 끊기자 해외 시장 눈돌려

입력 2014-11-29 03:00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복원·보수 담당 책임자 세르지오 푸세티씨가 지난 6일(현지시간) 성당에서 국민일보 기자를 만나 아직 복원되지 않은 8만여개의 벽화 조각들을 보여주며 지진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아시시=서윤경 기자
이탈리아 피렌체의 국립복원연구소(OPD)가 세계 최고의 문화재 복원기관으로 성장하게 된 데는 금융업으로 부(富)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OPD는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황금기였던 1588년 페르디난도 프리모(1세) 메디치가 세웠다.

지난 7일(현지시간) OPD에서 만난 크리스티나 임프로타 홍보담당자는 “문화부 직속 기관임에도 정부 지원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올해도 OPD가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것은 연간 예산의 30%에 해당하는 130만 유로(약 17억9700만원)에 불과하다. 말도 안 되는 액수”라고 토로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이탈리아 정부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다. 이는 문화재 보존·복원 기관들에도 타격을 줬다. OPD는 물론 로마의 고등보존복원연구소(ISCR) 국립복원학교(SCUOLA), 문화유산보존진흥연구소(ICVBC)와 박물관, 미술관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현장에서 만난 기관 담당자들은 “정부는 각자 알아서 하라며 뒷짐을 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교육 기관인 OPD와 SCUOLA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문화재 보존·복원에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서 관련 기관들은 전문가들이 퇴직을 해도 충원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졸업 이후 갈 곳이 없었다. 이 같은 문제가 노출되자 각 교육기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재정 부족을 해결하고 있다.

OPD는 미국의 게티재단 등을 통해 지원받고 있다. 복원 중인 조르조 바사리의 회화 작품도 게티재단에서 지원을 받았다. 임프로타씨는 “게티는 지원 당시 조건을 내걸었다”며 “30세 미만의 젊은 연구원들에게 복원을 맡겨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OPD가 최근 외국어 교육에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SCUOLA의 도나텔라 카베찰리 교장도 “해외 무대에 학교의 교육 시스템과 학생들의 실력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고 했다. 주로 자본력이 있으면서 문화재도 많은 중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 전쟁으로 복원이 필요한 중동 국가 등이다. SCUOLA 출신의 ISCR 연구원들은 중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1994∼98년 중국의 진시황릉, 2005년 자금성 복원에 나섰다. 이라크전쟁 이후 파손된 바그다드 박물관 복원에도 참여했다. 한국의 지원 요청을 받은 적은 없다.

나름의 규칙도 있다. 무작정 이탈리아 시스템을 강요하는 대신 각국의 특수성을 존중하고 그에 맞는 시스템에 따른다는 것이다.

카베찰리 교장은 “석재 문화재 위주의 이탈리아와 달리 아시아는 목재 문화재가 많아 최근엔 관련 섹션도 만들어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마·피렌체=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