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거래 기준 애매모호… 은행도 고객도 혼란

입력 2014-11-28 02:23 수정 2014-11-28 07:57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 시행(29일)을 앞두고 가슴앓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모씨는 4명이 공동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보증금 때문에 걱정이다. 받은 돈을 한 사람 명의의 통장에 넣어놨기 때문이다. 법 강화로 차명거래가 적발되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뉴스에 김씨는 전전긍긍하며 여기저기 문의했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개정된 금융실명제법 적용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금융소비자들의 문의가 은행 영업점에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자 은행연합회 등 금융협회는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요 문의 사항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내용을 정리한 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하지만 그 외 사례들도 많고, 답변된 내용 안에서도 모호한 부분이 많아 금융소비자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김씨도 은행을 세 곳이나 찾아가 문의했지만 “차명거래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확답은 들을 수 없었다. 김씨는 “건물 보증금에 대한 소득세도 확실히 내고 있어 탈세의 목적이 전혀 아니다”며 “돈을 떼이는 것도 염려되지만 처벌 여부가 가장 걱정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은행들이 확답을 못 주니 가장 확실한 금융 당국의 답을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금융위원회는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차명거래 해당 여부는 법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내놓기 어렵다”며 “금융협회에서 내놓은 질의응답 자료를 금융위가 감수했기 때문에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 “개별 사안에 대해 궁금할 때는 금융위에 직접 문의하거나 각 금융협회 담당 직원에게 연락하면 된다”며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융소비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당국이 한 발 떨어져 상황을 관망하는 사이 은행권 내에서도 차명계좌 판단 해석이 갈리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융위 감수를 거친 질의응답 자료를 일종의 당국 유권해석으로 볼 수 있다”며”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의 유권해석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질의응답에서 판단한 내용을 100% 확신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차명거래에 대해 제대로 안내하지 않거나 불법 차명거래를 알선·중개할 경우 은행 직원이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원칙대로만 설명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들이 명확한 답을 얻기 힘든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곳곳에서 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당국이 차명거래 시행과 동시에 바로 칼을 뽑아들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29일 법 시작과 동시에 바로 제재하기보다는 1년 정도 지켜보면서 각 사례를 살펴보고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예상했다. 한 세무사는 “고액 자산가 탈세를 막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모든 차명거래를 살펴보고 처벌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며 “일부에서는 세무조사를 기준으로 삼아 5억원 이상 등 일정금액이 넘는 경우만 처벌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