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뉴스] 청정에너지 시대 ‘Green USA’

입력 2014-11-28 03:39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에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주내 최대 발전회사인 PG&E가 운영하는 풍력발전소. PG&E 제공
PG&E의 태양광발전소. 미국 전체 주택 가운데 태양광 시설을 갖춘 지붕의 4분의 1이 캘리포니아에 있다. PG&E 제공
거의 모든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두 나라인 미국과 중국이 지난 12일 온실가스 감축에 합의했습니다. 미국은 2025년까지 온실가스를 2005년 수준에서 26∼28% 줄이고, 중국은 2030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가로 늘리지 않기로 한 것이죠. 합쳐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온실가스의 국제적 감축 노력에 동참하길 꺼리던 두 나라가 감축 목표를 제시함에 따라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체제에 힘이 실리게 됐습니다. 러시아 호주 일본 등은 물론 우리나라도 곧 새로운 온실가스 의무감축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미국 워싱턴DC와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 미국 에너지 규제 당국, 환경청, 캘리포니아주 전력·가스산업, 스탠퍼드대 연구소 등의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해 대체로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미국의 최근 경기 회복에는 원유가격 하락, 셰일가스층의 개발 등 에너지 부문의 호재도 수출 확대와 고용 창출을 통해 적지 않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석탄발전소 감축, 배출권거래제 시행 등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런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죠. 특히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청정에너지의 급속한 보급 확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 높이도록 만든 주요 원동력의 하나입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2020년까지 발전원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공용 토지에 재생에너지 단지를 50개나 설치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청정에너지 확대에 중점을 두는 이유에 대해 “기후변화 대응, 국가안보 및 경제적 기회에 모두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수력을 제외하고 6%입니다. 2007년의 2.5%에 비해 크게 높아졌죠.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풍력 발전량은 3배, 태양에너지 발전량은 10배 가까이 증가한 덕분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수단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에너지효율 향상, 청정에너지 확대, 배출권거래제나 탄소세와 같은 금전적 인센티브 혹은 규제입니다. 에너지효율 향상은 같은 단위의 경제활동이나 난방, 조명 등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입니다. 자동차 연비향상 및 건물의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고 기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아예 도시계획이나 교통정책 수립단계에서 자동차 주행거리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담는 것도 포함됩니다.

두 번째로는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화석연료를 청정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청정에너지는 보통 신·재생에너지를 말하지만, 미국은 원자력과 셰일가스도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고, 정책과 지원도 재생에너지와는 별개로 이뤄집니다. 반면 태양광 풍력 바이오연료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해서는 정파나 이념에 무관하게 반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이 확대되면 석탄 등 화석연료를 쓰는 발전소가 사라져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발전용 에너지 가운데 화석연료의 비중은 75.3%로 중국의 69.1%보다도 더 높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정책은 화력발전소의 일자리를 없앤다고 해서 ‘석탄과의 전쟁’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석탄발전소의 단계적 폐쇄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배출권거래제, 즉 ‘캡앤드트레이드(cap and trade)’는 산업·업종별로 온실가스 배출 상한선을 설정하고, 각 기업이 할당받은 배출권 중 남는 만큼 시장에서 팔거나 부족한 만큼 사들이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미국에서 지역단위의 배출권거래제를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동북부 9개주는 이를 통해 당초 목표를 크게 웃도는 감축 효과를 봤습니다. ‘지역온실가스 이니셔티브(RGGI)’라는 이 제도에 참가 중인 메릴랜드주의 루크 위스니에크 기후변화팀장은 “지역 내 발전사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제도 시행 전 1억6250만t에서 2013년 1억t 이하로 줄어들었다”면서 “배출권 경매를 통해 메릴랜드 주정부가 벌어들인 수익 3억8250만 달러(4196억원)는 전기요금 지원이나 에너지 효율 향상에 사용됐다”고 말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규제로 받아들이는 기업들이 이에 반대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정도 차이이지 공통적인 것 같습니다. 단기적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개별 기업들은 청정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당장 비용이 발생하는 배출권거래제나 탄소세 도입에 반대 로비를 펼치곤 합니다. RGGI 확대도 중간선거에서 양원을 장악한 의회의 반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위스니에크 팀장은 “뉴저지주가 정치적 이유로 RGGI에서 탈퇴했다”고 말했습니다. 퓨 자선기금의 청정에너지 담당자인 제시카 루벳스키도 “그간 정부는 일관되지 못한 정책을 보였고 의회는 정책을 철회했다 다시 하곤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 이득은 혁신, 일자리 창출, 국제수지 개선 등 헤아릴 수 없습니다. 초당적 비영리 단체인 미국에너지혁신위원회의 제이슨 버웬 선임분석가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연구·개발의 혜택은 5∼20년 후에야 드러난다”며 “셰일가스 채굴도 1980∼90년대 지열에너지를 얻기 위한 굴착기술이 바탕이 됨으로써 가능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꾸준한 연구·개발 지출은 결코 사치가 아니고 이를 통해 모든 에너지 분야 기업이 득을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청정에너지 투자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퓨 자선기금에 따르면 지난해 청정에너지 분야 투자에서 미국은 367억 달러(약 40조원)를 기록해 중국의 542억 달러에 이어 G20 국가 중 2위를 차지했습니다. 재생에너지 분야는 불과 7∼8년 전만 해도 유럽의 선진국들이 크게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온실가스 목표 설정이나 재설정 배경은 결국 재생에너지 분야에서의 자신감입니다.

캘리포니아주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모든 주요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주내 최대 전기·가스 공급업체인 PG&E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연료를 쓰는 발전소로부터 전기의 55%를 공급받습니다. 재생에너지는 태양광 풍력 지열 바이오에너지를 중심으로 22%를 의존하고 있답니다. 이 업체의 시에나 로저스 에너지조달담당은 “주정부의 규제로 전기 판매 이익은 판매량에 무관하게 고정돼 있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화를 추구함으로써 수익을 더 내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캘리포니아주는 주 단위의 배출권거래제를 전 산업을 대상으로 실시 중입니다. 내년부터는 수송 부문과 자영업자도 포함할 예정입니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제임스 스위니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국 정부도 태양광과 풍력발전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실시해야 한다”면서 “산업계 자체가 에너지 과다 사용을 줄이기 위한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워싱턴DC·샌프란시스코=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