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절망은 희망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시위대의 방화와 약탈로 몸살을 앓고 있는 퍼거슨에도 희망은 싹트고 있다.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 사는 17세 소녀 몰리 로저스는 26일(현지시간) 상점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페인트 통을 들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상점 주인들은 요즘 시위대가 깬 유리창을 임시방편으로 판자로 막아놓고 있다. 새 유리로 갈아 끼워도 시위대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거친 나무판자가 여기저기 나붙어 있어 이 일대가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로저스는 주인들의 요청으로 판자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주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로저스가 많이 써준 문구는 ‘사랑은 승리한다(Love will win)’이다. 이럴 때일수록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체의 재건’에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그녀는 미국 언론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평소 못 느꼈지만 우리 공동체에도 사랑이 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페인트를 사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로저스는 전날에도 거리 청소 자원봉사를 했다.
장로교 목사인 멜 스미스(32·여)도 시름에 빠진 상인들을 돕기 위해 퍼거슨으로 달려왔다. 그 또한 한 커피숍의 판자를 장식하는 일을 도왔다. 그는 “장식에 쓸 말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희망과 관련된 말을 검색했다”면서 “마침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의 글귀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그가 커피숍 창문을 가린 판자에 쓴 글은 ‘희망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게 해준다(Hope is being able to see that there is light despite all of the darkness)’는 내용이다.
자원봉사 없이 스스로 창문에 판자를 대고 장식을 하는 상인들도 많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은 “폭력 사태 때문인지 상인들이 올해는 ‘땅 위에 평화를(Peace On Earth)’이라는 글을 많이 쓰고 있다”고 전했다.
총격 사건 이후 퍼거슨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더욱 서로를 경계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상대를 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퍼거슨 중심가의 백인 더그 머렐로가 운영하는 주유소와 편의점을 흑인 4명이 며칠째 지켜주고 있다. 머렐로가 평소 흑인들을 많이 고용하고, 또 인간적으로 대우해줬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방범활동에 나선 것이다.
퍼거슨 시내는 이번 사건이 아니었으면 추수감사절(27∼30일) 쇼핑객들로 넘쳐났을 시기다. 상인들은 연중 최대의 대목을 놓쳐 많이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예전에 못 봤던 희망을 수확하고 있고, 그 희망이 앞으로 더욱 건강하고 풍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낼 것이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사랑이 승리한다”… 美 퍼거슨에 ‘공동체 재건’ 페인트 칠하는 사람들
입력 2014-11-28 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