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싸늘해지고 주변의 나무들이 천연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지가 꽤 된다. 가을의 전령인 노란 은행잎들은 이젠 길 위에 지천으로 깔려 밟지 않고는 지나갈 수가 없다. 그 위를 그냥 밟고 가기 미안한 마음에 신발로 바닥을 끌면서 나뭇잎을 밀치고 나아간다. 그럼에도 낙엽이 신발 바닥 밑에서 밟히며 끌린다. 낙엽이 끌리며 밟히는 느낌이 새롭다.
벌써 가을의 끝머리에 와 있다. 찬바람이 불고 추위에 어깨를 움츠리게 되면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해진다. 트렌치코트의 깃을 올려 보지만 추운 느낌은 여전하다.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내가 가을을 타는지 마음이 울적해진다.
가을에 들어서서 입맛이 당기고 밥맛이 좋다. 이러다가 하늘은 맑고 말만 살찌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살이 찌겠네 하며 체중계에 자주 오르내리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데 웬걸 열흘 전부터 코감기 기운이 들며 목소리가 변했다. 큰 일교차와 과로로 면역력이 약해졌나 보다. 코감기로 목소리가 맹맹해 사람들과 말할 때 미안한 마음이다. 예전엔 감기 정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요즘엔 감기에 한 번 걸리면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기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감기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 몸의 신체 나이를 안타까워하며 지켜볼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가을은 유난히 가을을 심하게 타는 듯하다. 쓸쓸한 가을의 기운에 젖어들면 옆구리의 바늘구멍에서 외로움이 황소바람으로 들어온다. 이럴 때는 이 세상에 나 홀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불어오는 찬바람을 홀로 맞고 있다는 기분이다. 마음 한편에는 ‘내가 이런 정도에 약해진단 말인가’라며 생존본능이 꿈틀거리기도 한다.
가을을 타는 마음은 자신이 지금 외롭고 고독하다는 느낌에 ‘접촉’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슬픔을 느끼는 것이지 내가 슬픈 것이 아니다.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내 가슴이 촉촉하게 살아 있음을 뜻한다. 가을의 쓸쓸함이 마음속으로 밀려옴을 회피하지 않고 주시하고 있어 본다. 그러면 가슴이 ‘싸하게’ 아리다가도 조금 있으면 이것도 어느덧 지나가리라는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마음에서 보면 지금 이 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로 인도하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 ‘카이로스’가 일어나는 축복의 통로라는 걸 볼 수 있다.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며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어느 시인이 노래하듯 자신의 마음이 외로우면 남을 바라보며 남이 나를 버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내가 외롭고 허전한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 ‘하나님은 사랑(요일 4:8)’이심을 믿고 있으면서 내 안과 밖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놓치고서 그 허전함을 밖을 보며 남 탓을 하는 어리석음을 반성한다. 가을 타는 마음을 바라보며 나를 다시금 다잡아 세우는 은총의 시간을 가진다.
권명수 교수 (한신대 목회상담)
[시온의 소리-권명수] 가을 타는 마음
입력 2014-11-28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