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세상 읽기] 성화(聖畵) 앞에서 드리는 기도

입력 2014-11-29 02:09

이탈리아를 방문해서 꼭 한 곳을 봐야 한다면 어디를 가야 할까. 추천받아 방문한 곳이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이다. 베네치아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서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는 걸출한 화가 지오토 디 본도네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인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생애가 아담한 가족 예배당의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당대에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쌓았던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건축한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성화(聖畵)들은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세와 르네상스기의 다리 역할을 했던 지오토의 프레스코화이기 때문이다.

벽면에는 ‘최후의 심판’ ‘마리아의 생애’ ‘그리스도의 생애’ 등 성경의 주요 장면을 담은 그림이 가득 차 있다. 1305년에 완성된 가족 예배당은 보존을 위해서 25명을 기준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관람 시간도 불과 15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짧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예배당의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총총하게 빛나는 별과 짙고 엷은 푸른색 위에 펼쳐진 신비로운 하늘나라 그리고 그 아래에 펼쳐진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비롯한 활동들은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울림을 줄 정도다.

이곳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에는 귀한 성당들이 있고 그 안에는 방문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남을 만한 성화들이 천장과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이나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기 전에는 성화는 그저 기술이 뛰어난 화가들이 그린 그림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다음에 역사적인 성당에서 만나는 성화들은 다른 차원으로 다가온다. 특히 스크로베니 예배당처럼 하늘나라와 승천 그리고 최후의 심판 등을 정교하게 그린 성화들을 볼 때면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지식이나 지성 그리고 기술과 노력만으로 저런 작품들이 나올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 화가들의 사생활이나 삶이 어떠하였는지를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읽는 것만으로는 하늘나라를 묘사한 그림들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당시에는 오늘날보다는 삶이 단순했을 것이다.

지오토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기술자나 예술가로서도 탁월했겠지만 영혼의 세계도 맑고 깨끗했을 것이다. 그들은 성경 말씀도 가까이 했겠지만 사도 바울이나 선지자들이 그랬듯이 그림을 그려가는 중에 기도를 통해 환상과 계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뛰어난 기술에만 의존한 그림이라면 수백년의 세월을 넘어 감동을 주기는 힘들 것이다. 지오토의 성화들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하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걸출한 성화들이 시대를 넘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일은 우선 화가들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작품을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작품을 그리는 동안 하늘나라와 하늘 보좌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감동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작품을 완성시켜 가는 과정에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들의 기도가 보통 사람들의 기도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였을 것이다. 시편의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24)는 말씀처럼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열납되었을 것이다.

기도를 통해 화가들은 환상을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기도 속에 떠올랐던 하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작품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감동을 남기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구원의 믿음을 얻게 되고 성경의 지식을 탐독함으로써 하나님과 그 나라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가게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매일매일 본받아 가는 삶을 통해서 성화(聖化)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은혜와 노력이 더해지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하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소망을 갖게 된다. 르네상스기의 걸출한 화가들이 자신의 기도 속에 보았던 하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그렸던 것처럼 말이다. 성경은 팔복을 지키는 자를 온전한 자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온전한 것처럼 우리도 온전하라고 권한다. 그런 권면을 충실히 따라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지게 되면 우리는 산상수훈의 말씀처럼 기도 속에서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복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성당을 방문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다. 기도 속에서 마치 파노라마가 펼쳐지듯이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주님, 저분들이 저렇게 아름다운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볼 수 있었듯이 기도 속에서 저 세상과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