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지대 11채 암석 교회가 백미… 빼어난 자연 탐방은 덤

입력 2014-12-01 02:58
에티오피아가 자랑하는 랄리벨라 지역의 암석 교회 11채 가운데 하나인 '성 기오르기스 교회'. 건축물 지붕에 십자가를 세 겹으로 조각해 놓았다. 노아의 방주를 연상해 지었기 때문에 교회 1층에는 창문이 닫힌 상태로, 2층은 창문을 열어 놓은 상태로 조각했다. 작은 사진은 교회 전경.
곤다르 지역의 파실 게비 유적. 왕궁 모습이 고풍스럽다.
가장 큰 오벨리스크가 무너져 방치돼 있다. 뒤편에 제일 높게 보이는 것이 이탈리아가 약탈했다 반환한 오벨리스크다.
나일강의 지류인 청나일강 상류에 있는 청나일폭포.
에티오피아는 성지순례와 자연탐방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나라다. 아프리카에서 에티오피아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 건축된 교회와 유적이 많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명소도 여러 곳에 있다. 유적은 주로 랄리벨라 곤다르 악숨 지역에 흩어져 있다. 역대 왕조들이 부흥기를 맞아 뛰어난 유적들을 남긴 것이다.

랄리벨라 암석 교회들

에티오피아 성지순례의 알파요 오메가에 속한다. 랄리벨라는 13세기부터 ‘새로운 예루살렘’이라고 불리고 있다. 에티오피아인들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가는 대신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암석 교회는 모두 11채로, 해발 3000m 안팎의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유네스코는 암석 교회가 폭우에 침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 교회의 지붕 위에 비막이 공사를 해 놓았다. 현지인들이 ‘요르단강’이라고 부르는 계곡이 있다. 우기에는 물이 흐르지만 건기에는 마르는 건천(乾川)이다.

교회 건축 방법이 기상천외하다. 보통 교회는 터를 닦고, 기초를 세우고, 1층부터 쌓아 올리지만 암석 교회들은 위에서부터 바위산을 깎아서 만들었다. 붉은 응회암을 망치 정 끌로 깎고 파서 만든 것이다. 가장 규모가 큰 ‘메드하네알렘교회’는 거대한 바위산을 가로, 세로, 깊이 각각 22m, 33m, 11m로 깎아서 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외형에 문을 내고 바위 속을 파고 들어가 예배실 성소 기둥들을 만들었다. 암석 교회 외벽에는 의미 있는 십자가나 장식을 새겨 넣었다. 외벽이나 내벽을 보면 정이나 끌로 깎아낸 자국이 선명하다. 작업을 하기 위해 외형의 주변도 큰 폭과 깊이로 깎았다.

교회와 교회를 지하로 연결하는 터널이 여럿 있다. 현지인들은 이 터널을 지옥길이라고 부른다. 터널의 총 길이가 상당하지만 안전을 고려해 순례객들에게는 30∼40m만 공개한다. 대개 ‘임마누엘 교회’에서 ‘아바리바노스 교회’를 연결하는 터널을 걷도록 한다. 현지 가이드가 앞장서면 순례객들이 한 손으로 앞선 이의 옷깃을 잡고, 다른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터널을 통과한다. 전혀 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눈을 떠도 감은 것처럼 암흑천지다. 칠흑 속을 걸으면 불안감과 답답함이 엄습한다. 지옥길이 따로 없다. 그러다 지상으로 나오면 바로 이곳이 ‘천국이구나’ 하고 실감한다.

암석 교회들에는 성인이 어깨를 펴고 통과하기에 불편할 정도로 비좁은 출구가 있다. ‘바늘귀’라고 부르는 곳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지옥길과 바늘귀를 통과하면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된다.

랄리벨라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과 성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바탕으로 암석 교회들을 짓게 했다고 한다. 랄리벨라 왕국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려면 무슬림이 득세한 곳들을 통과해야 했다. 많은 군사와 가솔을 이끈 왕이 성지순례를 하기도 험하고 위험했는데, 일반 성도들의 고충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랄리벨라 왕은 성도들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 교회를 건축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교회 11채를 만드는 데 120년이나 걸렸다. 대역사에는 팔레스티나와 이집트에서 데려온 석공들도 투입했다. 현지 가이드는 “낮에는 인부들이 일하고 밤에는 천사들이 내려와 공사한 것으로 에티오피아인들은 믿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돕지 않았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대역사(大役事)였음을 강조한 설명이리라. 이스라엘과 유럽의 성지를 순례한 이들이라도 랄리벨라에서는 이전과 색다른 성지 체험을 할 수 있다. 여행 가이드 아슈(33)씨는 “해마다 30만명에 달하는 내외국인이 암석 교회들을 찾는다”며 “특히 에티오피아 명절이 있는 기간에는 하루에 수천명이 이곳을 찾아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고 말했다.



악숨 왕국의 오벨리스크

고대 에티오피아의 중심인 악숨 왕국은 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 사이에서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다. 1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건설된 유적들이 즐비하다. 악숨 고고유적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가장 유명한 유적은 도시 곳곳에 세워진 수백개의 오벨리스크다. 가장 큰 오벨리스크는 높이가 33m에 이른다.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넘어졌고 다섯 동강 난 채 방치돼 있다.

두 번째로 큰 오벨리스크는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점령했을 때 세 동강으로 쪼개 약탈해 갔다. 유엔을 비롯한 세계 여론에 밀려 뒤늦게 반환했다. 지금도 세 동강 났던 흔적이 남아 있다. 오벨리스크 지하에는 왕의 무덤이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원석을 옮겨와 조각해 놓은 모습이 일품이다. 연구자들은 많은 코끼리와 노동자들이 원석 운반에 동원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성모 마리아 시온 교회’도 둘러볼 만하다. 이 교회는 관례에 따라 여성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세계 여론의 지적을 받고 바로 옆에 같은 이름의 교회를 세우고, 새 교회에만 여성 출입을 허용했다. 교회 내벽에 있는 성화(聖畵)들이 눈길을 끈다. 에티오피아인들은 두 개의 ‘성모 마리아 시온 교회’ 사이에 마련된 보관소에 성궤가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악숨을 성스러운 도시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 성궤를 본 사람은 없다. 에티오피아인들이 고대 시바 왕국의 유적이라고 여기는 시바 여왕의 왕궁 터와 대형 목욕탕(또는 수영장)도 이 지역의 관광명소다. 고고학자들은 시바 여왕 때보다 훨씬 뒤에 건축된 것이라고 말한다.



곤다르의 파실 게비 유적들

곤다르 지역에 있는 파실 게비(Fasil Ghebbi) 유적들은 17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에티오피아 황제들의 궁전이자 요새였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건축 양식이 매우 다양하다. 시대에 따라 아프리카, 힌두, 아랍,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900m 길이의 성벽과 궁전, 교회, 수도원, 도서관, 연회장, 대형 수영장, 사자 우리 등이 보존돼 있다. 유적 규모가 거대한 것은 아니지만 고성(古城)다운 풍모를 풍긴다. 현지인들은 “영화 ‘반지의 제왕’ 제작자 측이 곤다르 유적지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제안했으나 에티오피아가 거절했다”며 “영화 제작자 측은 유적지에서 영화의 모티브만 얻어 갔다”고 말한다. 이 지역에는 1694년 개관한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에 교회’가 있는데, 천장에 에티오피아 특유의 천사 얼굴 144개가 그려져 있다. 얼굴 표정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한편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트리니티 대교회(삼위일체교회)’는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큰 정교회 교회로, 아름다운 외관과 내부에 벽화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 수도에 머무는 동안 한 번쯤 들르는 곳이다.



빼어난 자연 풍광

타나 호수는 자연탐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해발 1830m에 위치한 타나 호수 앞에 서면 수평선이 보인다. 호수의 표면적이 제주도의 두 배가량에 달할 만큼 광활하기 때문이다. 강줄기 네 개가 흘러드는 이 호수는 청나일 강의 수원지로 유명하다. 호수에 섬 37곳이 있고 ‘케브란 가브리엘’ 등 수도원 20여곳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청나일 폭포도 가볼 만한 곳이다. 46m 아래로 떨어진 물줄기가 만들어낸 물보라 사이로 피어난 무지개가 동심을 떠올리게 한다.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곳곳에서 웅장한 협곡을 감상할 수 있다.

랄리벨라·악숨·곤다르=글·사진 염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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