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성자 (5) ‘자폐와의 전쟁’ 고통의 나날에 찾아온 천사

입력 2014-11-28 02:32
첫아들 조지프(오른쪽)와 둘째 아들 홍민이. 하루 종일 말썽부리는 어린 아들들을 키우느라 힘든 날들이 계속됐다. 하나님은 멀어졌고 홀로 남았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첫아들 조지프가 자폐아라는 진단을 받은 뒤 자폐 증상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길을 가다 아무 아이나 때리기 일쑤였다. 밥 먹는 것, 대소변 가리는 일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아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나갈 수도, 음식점에 갈 수도 없었다.

내 아이에게 이런 증세가 있다는 말을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점점 방안에 숨긴 채 사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무엇보다 잠을 재우는 일이 문제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조지프는 차 타는 것을 무척 좋아해 차 안에 있는 동안은 창 밖 경치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는 조지프와 둘째 아들 홍민이를 차에 태워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이 일과가 돼 버렸다. 두 아이와 함께 교외로 나가 빙빙 돌다가 아이들이 지쳐 잠든 뒤에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때 운전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나중에 주행거리를 봤더니 보통 사람이 4년 동안 달리는 거리를 나는 거의 1년 만에 달렸다.

저녁 9∼10시가 되면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로 남편의 퇴근을 맞곤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공부하던 남편의 귀가시간은 나의 일과가 끝나는 밤 10시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토록 힘든 과정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묵묵히 전진했던 남편의 우직함이 존경스럽지만, 그땐 사업과 공부에만 몰두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혼자라는 외로움에 단단히 한몫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아픔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홀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떻게 또 하루를 보내지’ 하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하루빨리 아이들이 크면 이 폭풍 같은 삶의 고통이 마무리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혼자 동굴 속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남편도 우리 가족을 위해 함께 뛰고 있었고 주위의 도움도 받았지만 외로움과 고독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이런 날들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계속 내버려 둘 수 없으셨는지 한 천사를 보내 주셨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목회하시는 윌셔 한인장로교회에 한 여전도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셨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은 예언의 은사가 있는 분이라고 했다.

“예언의 은사?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왜 예언이 필요하지?”

당시 나는 예언이든 뭐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에 대한 믿음 자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니까 사는 것일 뿐 하나님께 뭔가를 구하려는 마음, 간구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도 희미해진 상태였다. 그런 내게 시어머니는 전도사님께 저녁식사를 대접해야 하니 집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함께한 식사가 끝난 뒤 갑자기 그 전도사님이 내게 말을 건넸다.

“기도를 해 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나에 대한 어떤 얘기도 나눈 바 없는 상태에서 그분은 갑자기 기도해주고 싶다는 말을 꺼내셨다.

“네, 그러세요.”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전혀 없던 나는 아무런 기대감 없이 그분의 제안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저 어릴 때부터 교회 어르신들이 나를 붙잡고 기도해 주시던 그런 일반적인 기도를 해 주실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나와 단둘이 앉아 기도를 하기 시작한 전도사님에게서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기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도가 나오고 있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