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소비자가 곧 광고 매체… 더불어 유희·전파하게 하라

입력 2014-11-28 02:00
KT가 선보인 기발한 광고와 마케팅 상품들. 왼쪽부터 영화 ‘클레멘타인’ 속편처럼 만든 광고 영상. 기지국수, 굿 초이수, 황금초콜릿, 볼거리빵빵 등 마케팅 상품들. 가장 최근에 내놓은 기가삼 이미지. KT 제공
신훈주 KT 상무가 27일 기가삼, 기지국수 등 직접 아이디어를 내 만든 마케팅 상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KT 제공
지난주 인터넷 세상은 영화 ‘클레멘타인2’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들썩였다. 배우 이동준이 주연과 감독을 맡아 2004년 개봉했던 ‘클레멘타인’은 흥행 참패를 기록한 영화다. 할리우드 스타 스티븐 시걸이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지만 누적관객수는 6만7000명에 불과했다. 이동준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52억원을 투자해 2억밖에 회수하지 못했다”고 자학 개그를 펼치기도 했다. 영화 자체보다 네티즌들이 이 영화로 각종 패러디 물을 만들어내는 ‘유희의 수단’으로 더 유명하다.

이런 영화의 속편이 나온다고 하자 네티즌들의 관심은 비상했다. 유튜브에선 30만명 이상이 영상을 봤고, 일부 매체는 정말 영화가 개봉하는지 알고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 영상은 KT의 광고 영상이었다. KT가 ‘기가(Giga) 와이파이’를 알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영상은 광고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KT와 관련된 이야기는 스쳐 지나간다. 네티즌들은 이 영상을 즐길 콘텐츠라고 판단해 퍼다 날랐고 인터넷 세상에서 화제거리가 됐다.

‘클레멘타인’에 아픈 기억이 있는 배우 이동준이 이런 영상 제작에 흔쾌히 찬성했을까. 광고를 기획한 KT 마케팅부문 통합마케팅커뮤니케이션(IMC)담당 신훈주(43) 상무는 27일 “본인이 더 적극적으로 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비스는 살짝 보여주면서 네티즌이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영상을 만들자고 기획했고, 클레멘타인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동준씨에게 얘기했을 때 본인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참여했다. 그분도 작업을 하면서 기가 살아나는 거 같았다”고 말했다.

신 상무는 현재를 ‘컨슈미디어’ 시대라고 정의했다. 컨슈머(소비자)와 미디어를 합친 조어로 신 상무가 만들었다. 개인이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라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전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통신망의 발달로 개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타인이 만들어 놓은 걸 유통시킬 수 있다. 자신에게 흥미 있는 내용이라면 자발적으로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신 상무는 “컨슈미디어 시대에 기업이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에도 기업, 개인 그리고 전 세계에서 나오는 이슈가 수백 가지에 이른다. 정보가 넘쳐나는데 우리가 알리고 싶다고 소비자들이 수용할 것이라는 건 착각이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입을 통해 자발적으로 전파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기업이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결과물을 내놓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메시지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사의 서비스나 제품의 장점을 소비자에게 주입하고 싶어 하지만, 소비자들은 재미가 없거나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사결정 단계를 올라갈수록 결정은 보수적이 되기 쉽다. 반짝거리는 아이디어가 최종적으로는 밋밋한 결과물로 나올 때가 많은 이유다.

신 상무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으면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로 갈수록 보수적이 되는 건 잘못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면서 “위험요인을 최대한 제거해 안심시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상무는 1997년 한솔PCS에 입사해 KTF를 거쳐 KT에서 브랜드 마케팅과 광고를 담당하고 있다. 2003년 KTF의 ‘해브 어 굿 타임’ 광고를 만들었고, 박찬욱 감독의 스마트폰 영화 ‘파란만장’을 기획·제작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칸 국제광고제 모바일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오랫동안 마케팅과 광고 업무를 하면서 그는 튀는 거 없이 둥글둥글하게 만드는 건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 상무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초기의 날카로움을 잃게 된다면 그건 버리는 게 낫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KT는 고객들에게 증정하는 마케팅 상품도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8㎓ 황금주파수를 강조할 때는 황금초콜릿을 증정했고, ‘굿 초이스’ 캠페인에는 ‘굿 초이수(水)’라는 생수를 나눠줬다. LTE 기지국이 많다는 걸 홍보할 때는 쌀국수 컵라면인 ‘기지국수’를 선보였다. 기가인터넷 마케팅을 시작하면서는 ‘기가삼(蔘)’이라는 홍삼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나 캠페인의 이름을 따 언어유희를 한 셈이다. 기가삼의 경우 몸에 좋은 ‘삼’이라는 뜻과 ‘기가 살아 난다’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담았다.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흥미를 느낀 고객도 있었고, 실없는 장난이라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 분명한 건 소비자들의 뇌리에 남았다는 것이다.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다. 신 상무는 “처음부터 100점짜리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건 주인의식을 가지고 구성원들이 고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은 10개의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9개가 성공한다”고 말했다.

기가삼의 경우 제품을 공급할 제조사와 협의가 잘 안 돼서 애를 먹었다. 아이디어가 나와서 상품이 선보이기까지 기간은 보통 한 달 정도인데, 제조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너무 촉박해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중에 나와있는 CJ와 접촉해 한뿌리 제품을 기가삼으로 활용키로 했다. 신 상무는 “먹는 거여서 고객들이 신뢰할 만한 건지 의심을 하는데, 믿을만한 제조사가 만든 거라고 확인을 할 수 있어서 반응이 더 좋은 거 같다”고 설명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