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서울대 교수 ‘작은 강아지의 사랑 이야기’ 특강

입력 2014-11-27 02:25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가 세상을 떠난 반려견 자스민을 생각하며 직접 그린 그림들.
김병종 교수
“자스민은 늘 기다려줬어요. 길을 가다 장애물이 있거나 경사가 심하면 아내나 아이들이 오는 것을 보고 움직였지요. 언제나 우리 가족의 걸음에 맞춰 다녔습니다.”

자스민은 서울대 미대 김병종(61·사진) 교수가 기르던 포메라니안 종의 강아지 이름이다. 김 교수는 지난 7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방한 때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던 한국의 대표 동양화가다. 16년 동안 가족과 함께 지냈던 자스민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평소 TV에 애견인이 나오면 그리 곱게 보지 않던 그였지만 자스민의 빈자리는 헛헛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김 교수는 26일 서울대 수의대에서 자스민 이야기를 갖고 특강을 했다. 주제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가르쳐 준 사랑 이야기’. 그는 “자스민이 죽었을 때 마음에만 품고 살려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더라. 하루하루 소소한 일상에 그 강아지가 이토록 크게 자리 잡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작은 생명체가 남기고 간 견고한 유대감은 경이로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하는 것의 소중함, 당연한 것에 대한 재발견, 기다림의 가치를 실감케 해줬다.

자스민은 ‘사랑은 기다림’이란 걸 몸으로 말해줬다고 한다. 가족 중 누구라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현관 앞에 앉아 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밤을 새워서라도 현관을 지키며 제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김 교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그는 “사랑은 기다림이구나, 오지 않는 그대를 기다리는 것뿐 아니라 그대의 실수와 잘못까지도 기다려주는 일이라는 걸 자스민을 보며 깨달았다”고 말했다.

자스민은 잔디밭에 놀러 가서는 아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주를 했다. 충분히 앞지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두 아이가 입시 준비를 하느라 새벽녘이 돼서야 학원에서 돌아오면 어두운 현관 신발장 옆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두 아이 중 하나라도 들어오지 않으면 현관문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불 꺼진 집에 들어왔을 때 어둠 속에서 꼬리를 흔들며 맞아주는 자스민의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줬다. 고달픈 수험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었다. 그렇게 자스민은 아이들 곁을 지켰다.

질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웃이 자기 애완견을 데리고 놀러오면 표정이 달라졌다고 한다. 하얀 푸들 강아지가 김 교수 무릎에 앉는 꼴을 보지 못했다. 어떻게든 쫓아내고 자신이 그 무릎에 앉았다. 김 교수는 “사랑에 관한한 결코 양보가 없었다. 자기가 사랑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추억했다. 생명이 만발할 때 우리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모든 평범한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 김 교수는 자스민이 어느 날 사라져버렸을 때 비로소 그 존재감을 느꼈다고 했다. 최근 ‘자스민, 어디로 가니?’란 책을 냈다. 조만간 중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우리는 뒤처진 사람을 재촉하곤 한다. 자스민은 그러지 않았다. 말없이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가장 좋은 헤어짐은 좋은 추억을 남기고 가는 것이다. 여러분도 그러길 바란다”며 강연을 맺었다.

김 교수는 특강 후 기자와 만나 “동물도 기다릴 줄 아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는지 반성하고 있다”며 “자스민이 떠난 후 아이들에게 전화라도 한 통 더하게 됐다. 나중에는 다 떠나겠지. 그래서 더욱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