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50억원 규모의 회사가 쥐도 새도 모르게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데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오전 11시쯤 서울 영등포구의 전시·설계업체 대표 A씨는 회계사인 지인으로부터 “회사를 넘겼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사업가라는 사람들이 “회사를 사고 싶다”며 사무실을 들락거린 게 불과 10여일 전이었다. 문득 분주히 서류를 검토하던 그들이 떠올랐다. 부리나케 차를 몰고 서초구 등기소로 향했다. 떨리는 손으로 등기부등본을 받아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A씨가 애지중지 키워온 회사의 대표이사 직함에 떡하니 다른 사람 이름이 올라 있었다.
정보통신업체 대표이사인 박모(44)씨 등은 지난 9월 회사를 매입하고 싶다며 A씨에게 접근했다. 매입 자금이라며 이들이 내민 통장에는 315억원이 찍혀 있었다. 사전 조사를 하고 싶다는 이들에게 A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법인 사업자등록증과 주주명부 등 내부 문서를 보여줬다. 그리고 정확히 15일 만에 회사를 통째로 도둑맞았다.
박씨 일당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정보통신업체의 법인 인감증명서를 A씨 회사의 법인 인감도장과 상호 변경하는 방법으로 주식양도양수 계약서, 주식 및 경영권 양수 계약서를 위조했다. A씨 회사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몰래 찍은 문서들을 이용했다. 이어 A씨를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고 자신들을 대표이사와 사내이사로 앉히는 내용의 주주총회 회의록도 꾸몄다.
이들은 가짜 서류들로 지난달 24일 공증을 받아 관할 등기소에 변경 등기를 접수했고, 사흘 만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A씨 회사를 손에 넣었다. 등기소나 공증사무소가 서류 검토 외에 별다른 확인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A씨에게 보여준 통장도 가짜였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위조 서류로 타인 회사의 명의를 불법으로 바꾼 혐의(사문서위조 등)로 박씨를 구속하고, 또 다른 박모(54)씨 등 공범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현재 운영 중인 정보통신업체도 지난 5월 같은 방법으로 가로채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한 상태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서류 위조’ 15일 만에 150억 규모 회사 ‘꿀꺽’
입력 2014-11-27 02:37